오르막길
- 등록일 : 2023-11-14 17:28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정소연
- 조회수 : 1212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시절
이게 맞나, 사는 게 의미가 있나,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길 몇 달....용기를 내 정신과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우울증 수치가 너무 높았고 자존감은 도망간지 오래인 나
나를 그려보라는 주문에 온통 회색빛 하늘과 검은 그림자인 나를 그려 넣었던 그 때
귀신에 홀린 듯 어둡고 싸늘한 색만 가득했던 그때의 나를 무지개 위로 올려둔 친구를 소개하고자 글을 시작한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상담도 받고 운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던 나는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어디서 나오는 용기인지 모를 첫 걸음을 떼며
삶의 의지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육아도 중요했지만 우선은 내가 살고 봐야 육아도 있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껴보며 두렵지만 힘찬 첫 걸음을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곤했다.
처음 산을 오를 때는 100미터도 못 가서 숨이 차올랐다. 괜히 했나 싶어 뒤를 돌아볼 때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볼 때마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두렵지만 지금의 이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자.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기이자 희망이다 를 외치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산을 올랐다.
이렇게 시작한 등산이 한 두달 이어지며 눈에 띄게 늘어난 폐활량과 혈색을 되찾게 되었다.
이제는 넘어갈 듯한 숨이 아니어도 산을 가뿐히 오르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다 늘 산 중턱에서 되돌아오는 사람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늘 궁금하기도 했지만 선뜻 말을 걸 용기가 없었는데 벤치에 우연히 같이 앉게 되면서 서투른 인사와 함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도 시간이 지나며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쩜 이렇게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상황이 같지는 않았지만 같은 어려움을 가졌기에 동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함께 용기를 낸 우리는 정상을 정복하고 함께 웃는 사이가 되었다.
나처럼 회색이기만 했던 그 친구도 어느덧 색깔을 입고 다양하게 웃는 아이가 되었다.
이제는 지친 나에게 한번 더를 외치는 그 친구는 전보다 훨씬,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나눠주고 있다.
아이를 참 예뻐하는 그 친구는 지금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어, 심지어 우리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어 일을 하고 있다.
그 때의 그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밝은 얼굴로 내 아이를 안고 함께 육아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 뿐이다.
지금은 이모이모를 부르며 잘 따르는 내 아이들은 선생님이자 이모가 된 친구의 손을 잡고 나의 출근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쩌다 친구가 된 그 친구 덕분에 마음 편하게 나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전처럼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열혈 워킹맘이 되었다.
함께 했던 그 시간만큼 우리의 우정도 우리의 육아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