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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더 이상 엄마 혼자의 몫은 아닌

"엄마, 창문밖을 봐요. 첫눈이 와요. 너무 예뻐요."


낮잠을 자려고 누워있던 딸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시끄러. 눈감아. 얼른자."


돌아오는 차가운 답에 아이는 시무룩한채 돌아누웠다.


백일이 안된 둘째의 잠투정을 받아내느라 힘들었던 나는

둘째가 잠든 이 고요한 시간에 

첫째도 같이 잠들어주길 바라며

첫눈이 반가웠던 아이의 말을 

차갑게 묵살해버렸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버겁기만 했다.


주말, 공휴일 상관없이 늘 출근을 해야하는 남편.

4시간 이상 걸리는 타지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

미국에 사는 언니.

강원도에 사는 동생.

서울에 사는 시누.

혈액암 판정을 받으신 친정어머니.


그리고

희귀난치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나.


나에게는 돌파구가 없었다.


그런 내가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첫째에게 아데노, 리노, 파라바이러스가 한꺼번에 와버렸다.

무섭게 열이 났고

천식이 있던 아이는 합병증으로 폐렴이 오면서

폐부종이 와 숨이 넘어갈듯한 기침을 해댔다.


"어머니, 입원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지독했고, 입원 환자 당사자와 보호자 1인만이 상주 가능했다.


아무것도 알 리 없는 둘째는 찢어지게 울어댔다.


첫째 아이를 간호해 줄 이도

둘째 아이를 돌보아 줄 이도

나에게는 없었다.


입원을 포기하고 돌아선 병원 창밖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길은 꽁꽁 얼어 도로에 차들은 여기저기 돌아 사고가 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나는 걷기로 하였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느라 4시간여를 보내는 동안

둘째는 잠에서 깨 배가 고파 울어대기 시작했고

수유를 하지 못해 젖이 돌다가 넘처버려

이미 옷이 다 젖어버렸고

첫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도 고프고 기력이 없었다.


오지 않을 남편을,

그치지 않을 눈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가 없어 나는 걸어가기로 했다.


첫째 아이의 외투 위로 내 스웨터를 벗어 감싸주고

나의 외투 속에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감춘 채

우리는 눈길을 나섰다.


눈보라는 거세지고

나는 당황하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슬펐지만

아무 내삭하지 않았다.


속이 깊은 첫째 아이는 눈보라가 얼굴을 치고

얼어버린 길을 넘어지면서도

결코 울거나 칭얼대지 않았다.


나는 류마티스와 쇼그렌 증후군, 루푸스라는 병을 가졌다.

시시때때로 다리가 굳어 걷기가 힘이 들고

다리 관절마다 물이 차서

걸을때마다 통증이 심하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어버린 서로의 손만 꼭 잡을 뿐이었다.


그때의 첫째 나이는,

겨우 5살이었다.


그 후로도 첫째 아이는 수도 없는 날을

들어보지도 못한 바이러스와 싸워야했으며

입원하지 못한 채 집에서 버텨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9개월 즈음 같이 고열이 났다.

입원을 해야했다.


차라리 둘을 같이 데리고 입원할 수 있으니

다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화장실 가기를 도와줘야하는 5살 아이와

이제 잡고 서기 시작하고 호기심 넘치는 9개월 남자아이 

둘을 입원해서 혼자서 케어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수액을 달고 있는 두 아이를 엄마 혼자 케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아동병원 접수창구와 입원병동 데스크에

'입원아동돌봄서비스'안내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이런 안내문을 보더라도

늘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도우미비용 지원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을거야,하고

문의도 하지 않은채 지나치기 일수였지만

간절했던 나에게 그날 그 안내문은 동아줄 같았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

광주여성단체협의회라는 곳에 문의를 하니

지체없이 바로 연락이 와서 신청할 수 있도록

빠르게 도움을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서류들을 구비하기에

금요일 오후5시는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날을 넘기면 주말에는 신청이 어려우니

당일 안에 신청하고

다음 날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아주 신속하고 또 유연하게 신청 처리를 도와주셨다.


예상보다 더 큰 돌봄비용지원 금액에

한번 더 놀랐다.


소득구간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다르지만

최대 구간에 속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돌봄도우미를 신청하는 비용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금액이었다.


그동안 '입원돌봄도우미'서비스를 알지 못해

아픈 아이도, 간호가 힘든 유병자였던 나도,

어리석게 더 힘든 나날을 보냈구나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고 애석했다.


담당자의 빠른 처리로 바로 다음 날부터

도우미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차분하고 노련하게 아이를 케어해주시고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슬기로운 입원 생활에 대하여 조언도 주셨다.


생각보다 짜임새있고 전문적이었다.

시간표가 있어 기관처럼 아이를 시간마다 다르게 케어해주시고

아이 눈높이에 맞춘 놀잇감도 구비해오셔서

아이가 도우미 선생님 오시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지루한 입원 생활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셨다.


친정어머니처럼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시며

낮잠이라도 자며 쉬라고

둘째 아이도 케어해주시는 깊은 정에

큰 감동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 돌봄 비용으로 일주일을 같이 하며

너무도 만족스러웠고 감사했다.


몸이 불편한 엄마, 출근해야하는 엄마,

기타 여러가지 사정으로 입원시 돌봄이 난감했던

보호자들에게 빛과 같은 지원 정책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육아는 나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닥쳐오는 일들이 큰 산과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육아가 두렵지 않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나의 힘들 육아를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