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체험수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등록일 : 2022-11-13 18:03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임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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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나는 2살 쌍둥이 엄마다. 지난해 어여쁜 남매 쌍둥이를 얻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독박육아로 지쳐갈 즈음이면 그 말이 더 실감나게 와 닿는다.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져야 하는 무게가 더 큰 것 같다.
친정도 시댁도 아이들 육아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남편은 직장 문제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니 자연스럽게 내가 더 감당해야 하는 몫이 늘어났고 나는 지쳐서 예민해졌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들도 많아졌다. 아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뒤돌아서면 너무 미안해지고 죄책감이 생겼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육아멘토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지만 또 화를 내고 만다. 육아란 정말 현실이다.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쌍둥이라며 다들 관심을 갖는다. 요즘은 둘이 발달 상황이 달라 연년생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한번쯤 쌍둥이냐고 물어보고, 한꺼번에 낳아 기르니 힘들어도 좋겠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힘들어 죽을 맛이지만 두 아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쌍둥이들은 뭐든 두배다. 분유값도, 식비도, 기저귀도, 옷도 두배로 들었고 힘든 것도 두배지만 기쁨도 두배로 느낀다. 그리고 아플 때도 동시에 아플 때가 많다.
올 여름 우리 둥이들은 돌이 지나자마자 각종 바이러스에 걸려 아팠다. 파라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보카바이러스 유행하는 바이러스도 참 많더라. 우리 아이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쌍둥이라 한 배에서 영양분을 나눠가져야 하니 더 부족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돌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너무 일찍 어린이집을 보낸 건 아닌가 싶고.. 내가 둘을 본다는 이유로 더 신경을 못써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기 정말 다른 날들보다 힘듦을 느꼈다.
아이들은 5월, 7월 두 번을 입원하고 한번 입원할 때마다 일주일은 병원에 있었다. 링거줄을 꼽고 아이들은 열심히 병원 안을 돌아다녔다. 그 좁은 병실 안에서 아이들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정말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링거줄이 꼬이기도 일쑤고 집에서 잘 자던 낮잠도 안 자려고 했다. 나는 옴짝달싹 못했고 예민해져갔다. 남편이 와야 겨우 애들 데리고 바깥 산책이라도 갈 수 있었다. 휠체어 끌고 링거줄 잡고 산책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7월에 아이들이 두 번째로 입원했을 때에는 나도 같이 아팠다. 몸이 약해진 탓인지 목소리도 쉬어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동생이 여성가족재단에서 운영하는 ‘입원아동돌봄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 알려줬다. 바보같이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도움을 받아볼 생각도 못했고, 육아지원사업에 대해 넘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주저 없이 바로 신청했고 빠르게 접수되었다. 카톡으로 필요한 서류 목록을 알려주었고, 누락된 서류도 카톡으로 보완이 되니 좋았다.
돌봄선생님은 신청 다음날 바로 오셨다. 사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불안감도 있었고, 돈에 대한 부담감에 한명만 해달라고 신청을 했었다. 하나만 봐주셔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자분의 설득으로 쌍둥이들을 각각 맡기기로 했고, 두 분이 오셨다.
돌봄 선생님은 아이랑 놀아줄 장난감도 챙겨 오시고, 오자마자 응가한 아이 엉덩이를 씻기느라 분주한 나를 도와주시고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안아 병실을 산책하셨다. 산책은 병실 안에서만 한다고 하셨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오면 된다고 하셨다. 그동안 나는 볼일도 보고, 집에서 편하게 샤워하고 누워서 쉬기도 했다. 몇 시간이 지나서 병실에 도착하니 아이들 모두 편하게 돌봄 선생님과 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한 아이 링거줄이 이상해서 교체를 요청했고 교체하러 가느라 아이 하나를 병실에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울고 있을까 걱정 되서 허둥지둥 병실로 돌아오는데 돌봄 선생님이 원래 출근시간보다 일찍 와서 아이 엉덩이를 씻기고 계셨다. 일찍 오셔서 놀랐다고 하는 내게 와보니까 울고 있고, 기저귀를 보니 응가를 했길래 씻겼다고 하셨다. 참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그날도 그분들 덕분에 나는 집에서 식사도 하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병실에 있었다면 또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제도를 이용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아이들은 잘 퇴원했다. 비용도 둥이들은 한명 50감면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이 나오지 않아 부담이 적었다.
그 뒤로 우리 아이들은 수족구도 걸리고, 감기도 걸리고 열심히 어지르고 놀기도 한다. 매일 전쟁 같은 육아일상이다. 둘이 살기에 딱 좋았던 24평 우리 집은 이제 아이들 물건이 늘어나 우리 부부 물건을 치우다가 결국 이사가야한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늘 치워도 어질러져 있고, 쇼핑을 해도 식당에서 밥 먹는것도 모두 아이들 우선이다. 배달음식에 대충 먹고 살았는데 매일 무슨 반찬을 해줄까, 뭘 먹일까 고민하고 요리한다. 힘들게 요리해서 주면 입맛에 안 맞는다고 뱉어버리고 먹는 것 보다 흘리는 게 반이다. 그냥 대충 먹이자 하면서도 매일 장을 봐서 요리한다.
힘들지만 너무 사랑하는 내 아이들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크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다양하게 열려있으니 힘들 때는 나도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살아야 하니까.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을 또 잘 돌 볼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