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체험 수기] 치명적인 3연타
- 등록일 : 2022-11-13 11:24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곽현민
- 조회수 : 1253
11월달이 되어 제법 쌀쌀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새벽 3시 여지없이 알람 소리가 울린다. 첫째의 뒤척이는 소리, 둘째의 새근 새근 잠자는 숨소리 그리고 그 옆 갓난아이를 보느라, 지친 아내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나도 숨죽여 끙차 일어난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난 지도 어엿 1년이 다 되어간다. 친구의 전화 한통 즉 오늘 하루 땜빵 가능하냐는 부탁으로부터 이렇게 새벽 알바가 시작되었다. 아니 아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회사의 인센티브가 인색해졌고 그쯤 아내는 “ 여보 나 임신했데”
마냥 기쁨보다는 경제적인 살림살이 걱정이 먼저 쑥 치고 들어왔던, 그게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낮에는 사무실 의자에 않아 지루한 컴퓨터 화면을 보며, 고객들의 하소연을 클리어 하고, 새벽엔 킥보드 배터리 교체하는 일을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이젠, 둘째 탄생에 기쁨과 행복의 미소를 가득 아내에게 내보일수 있겠지,
사랑하니까, 가난해도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난 젊었다. 그때의 난 패기가 있었다. 그 젊음과 패기는 첫째의 키가 크면 클수록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지나친 허영심이었을까, 결혼을 준비 할때도 첫째딸을 혼수로 신혼집을 알아봤었다. 아파트는 너무 비쌌고, 우린 작은 원룸이라 할지라도 너와 내가 함께라면 잘살수 있을거라고 호언장담 했던 때가 있었지 말이다.
그저 찬바람 막아주는 집과 내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한없이 웃음만 주는 아이들만 있다면 이험한 세상 버틸수 있다고, 생각한 그 젊은 청년은 가장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을 것이다.
새벽 4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차디찬 공기가 폐에 들어와 정신을 맑게 해준다.
아무도 없는 거리는 내 모든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준다. 그리고 희망과 꿈을 꿀수 있게 해주는 이시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사서 하는 아내는 새벽 알바를 한다는 말을 듣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열정적으로 전전긍긍한다.
새벽일 하다 고통사고가 나면 어쩌냐, 세상이 너무 흉흉해, 새벽에 일하다 혹여 안좋은 일을 당하면 어쩌냐, 하루 하루 근심 걱정에 잠을 설치는 것이다.
오늘 새벽도 잠을 못잤는지‘여보, 조심히 들어와요’ 라는 카톡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카톡에는 내가 끊임없이 꿈틀대며,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들이 가득하다.
어느날은 “ 아빠 올 때 비 조심해, 비와, 알겠지?” 첫째딸의 음성 메시지가
어느날은 아빠 보고싶어,, 아빠 보고싶어 , 대성통곡하는 첫째딸의 동영상이,
어느날은 첫째딸이 아빠 자장가 들으면서 자고 싶다고, 잠을 자지 않는다고, 아내의 하소연이,
그런날 이면 여지없이 뭉클해질때도,
그런날 이면 찡긋 눈물이 날때도,
그런날 이면 저 깊은곳에서 답답함이 치고 올라올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날은 퇴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하루 종일 육아에 고군분투했을 헬쓱해진 아내의 얼굴이 불쑥, 오늘도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든 애잔한 첫째 딸 얼굴이 불쑥, 나를 흐트려 놓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애썼던 것뿐인데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는 건 아닌지, 무엇을 위해 정신없이 질주하는 것인지 희미해지는 순간이 간혹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런 날이면 괜히 미안해, 집 가기 전 마트에서 첫째가 좋아하는 뽀숑뽀숑 스티커를 사간다.
벌써 스티커를 받고 좋아할 첫째 딸 얼굴이 선하다.
그렇게 들어가는 날이면 가장의 무게에 오늘 따라 키가 줄어든 거 같다며 괜시리 눈물이 난다며 우스갯소리로 나를 놀리는 아내가 나를 맞이한다.
그 우스갯소리에 피식 하염없이 막막해진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고 이럴 때, 훈훈해지는 이 순간이 알바하려다 딱지나 떼이는, 운이 없는 아빠의 하루를 고해성사하는데는 딱이다.
그날은 운이 너무 좋아 초등학교 주변에 킥보드 열대가 세워져 있는거야 단시간에 많은 킥보드를 교체할 수 있어서 그런 날은 꿀이거든 신난 맘에 급히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 한참 들뜬 맘으로 교체했던 날이었던거 같은데.... 그날 이었던거 같아. 딱지가 떼인 날이,
하필 그곳이 초등학교 근처라 딱지가 떼인거 같아,
민망하게 주저리 주저리 말을 했다.
듣고 있던 아내는 똥손인건 어쩔수 없다며
아빠 똥손이라고 놀리자 딸과 소곤소곤 작당하는 아내
그 뒤로 아빠!! 조용히 부르더니, 이제 막 한글을 뗀 첫째딸은
볼펜으로 내 손등에 똥이라고 쓰는 거 아닌가
그리곤 아빠는 똥손이라고 킥킥 웃으며 놀리는 딸아이
어이없어 딸아이를 보는 나한테 다시
딸아이는
‘아빠는 울보래요~~ 울보래요! 나 탯줄 자를 때 울었다며, 우리 복(둘째태명)이 탯줄 자를 때도 울었지? 아빠는 울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을만 하면 다시 소환을 해 나를 또 괴롭히는데 빠지지 않은 아내의 뻔한 레파토리,
“아빠는 엄마한테 프로포즈도 안해서,,, 엄마가 프로포즈 했잖아. 언제하려나 몰라”
식은땀이 난다. 허허
프로포즈 할 타이밍을 놓쳐 못했던거 뿐인데 평생 놀리는 아내와 그리고 그 옆에서 덩달아 신나 더 배로 나를 괴롭히는 딸아이, 당할 수밖에 없는 3연타....
나를 위해, 꿈을 포기했던 내 아내에게
임신으로 너의 꿈을 어쩔수 없이 포기해야만 한 내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쑥스럽지만 프로포즈도 제대로 못한 나와 결혼해 주어, 두아이를 선물로 주어 고마워, ”
이제 프로포즈로 더 이상 놀리지 않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유쾌하게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