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가 애기를 낳다
- 등록일 : 2022-11-08 23:01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장송이
- 조회수 : 1952
"애기가 애기를 낳았구나"
우리 할머니가 늘상 하시던 말씀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날 예뻐하셨던 할머니는 얼마전 머나먼 하늘 길을 떠나셨다.
그 가시는 발걸음을 얼마나 붙잡고 싶었는지 할머니는 알고계실까
내 마음을 알고 계셨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지는 못하셨을 것 같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부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는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바쁜 엄마아빠를 대신할 만큼의 할머니 사랑파워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아이의 자존감을 이만큼이나 세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할머니 사랑만한 것이 없다고 나는 지금도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 강철나무 같던 할머니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온전히 그 짐을 지고 말았다.
그런 강철같은 할머니가 점점 무너지던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손잡아드리는 것, 좋아하시던 카스테라를 사다 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러 힘든 순간을 거치면서도 그래도 할머니가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면 나의 반쪽과 함께 방문하는 일이었다.
코로나 시기로 자주 찾아뵐 수는 없었지만 만날 수 있던 순간이 몇 번 있기는 했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자기자식 만나듯이 그렇게 손을 매만지고 예쁘다고 말해주셨다.
얘는 내 남자친구라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이 예쁘다고 하신다.
그런 예쁜 남친과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할머니는 감사하게도 그 순간에 함께하셨다. 할머니는 세상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다는 듯 온종일 웃고 계셨던 듯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느덧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받는 사랑만 경험하다가 온전히 다 내어주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야 체감하는 중이다.
할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할머니도 이런 기분으로 나를 바라보셨을까 싶다. 할머니가 빙의되는 순간만 같다.
아이를 낳았을 즈음 할머니 병세는 아주 깊어지셨고 오랫동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는 나빠져만같다.
그래도 나와 나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여느 때와 같은 애정과 사랑이 꿀처럼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몰아쉬기 일수라 말하기도 힘드셨을텐데 농담처럼 “애기가 애기를 낳았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무리 나도 이제 엄마라고 말해도 할머니가 부르는 내 이름은 애기다.
듣기 싫지 않은데 되게 쑥스러운 그말 ....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내가 눈물짓는 이유다.
요근래 감기에 걸려 칭얼대며 보채는 우리 아가는 오늘도 나를 잠못들게 한다.
하루가 너무 고단한 나에게는 이 밤이 건전지 떨어진 벽시계처럼 느껴진다.
영원히 멈춰있을 것만 같은 적막감이... 너무나 말똥한 눈으로 칭얼대는 소리와 콜라보를 이루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밤을 선물하는 것만 같다.
이럴 때 할머니가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뭔가 되게 현명한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클리어해버리셨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할머니 오늘은 뭐가 힘드셨어요~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러셨구나~”라며 실없는 소리를 해대자 뚱하니 쳐다보던 아이가 하하 웃는다.
출구없는 터널같은 이 밤이 그 웃음소리에 자동해제가 된다.
말도 안되는 순간에 서로 교감하는 것이 부모자식 사이일까... 뜬금없는 의문이 든다.
가끔은 답도 없고 출구도 없는 육아진행형 엄마이지만 왠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냥 내새끼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실 것만 같다.
할머니가 많이 보고싶고 그리운 밤에 써보는 글이라 울었다 썼다를 반복중이다. 그래도 간만에 할머니와 이야기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참 넉넉하다.
다들 잠든 고요한 밤을 빌려 조용히 외쳐본다.
“할머니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많이 사랑해요. 아직도 많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