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체험 수기] 너를 위한 발걸음
- 등록일 : 2022-11-08 15:28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고미경
- 조회수 : 2864
너를 위한 발걸음
그날은 높고 맑은 몽실 몽실 구름이 너무 예쁜 그런 날이었다
시원한 바람도 적당히 불고 햇빛도 따뜻했던, 마침 산책을 하기엔 딱 좋았던 그날, 그 가을에 난 둘째 아들을 낳았다
욕심이 많은 나로선 9개월간 일을 묵묵히 하고, 출산 예정일로부터 일주일을 남기고 출산 휴가를 냈다.
출산 예정일은 10월 8일 이었고, 10월 13일 응애, 소리와 함께 은우라는 예쁜 아가가 내품안에 안겨왔다.
누가 둘째 출산은 수월하다고 했는가 , 출산 예정일은 한참 지났고 자궁은 2.5센치가 열렸지만, 은우는 세상에 나오기 싫은지, 뱃속에서 닷새동안 버티다 40주5일 만에 방을 뺏다.
둘째가 아들이어서 그런가, 아님, 30대 중반은 이제 노산도 아니라지만 혹여 나이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24시간중 8시간 의자에 앉아 일을 했던 엄마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둘째는 임신때부터 나를 힘들게 했다.
첫째와는 다르게 아가 몸무게는 작았지만, 잦은 태동과 치골통으로 하루 길면 4시간, 짧으면 2시간 수면으로 그 기나긴 밤을 버텨야 했다.
임신기간 동안 몸도 마음도 정신도 지쳤던 나는 오로지 출산 예정일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게 수면부족이다 보니 당연 피곤과, 면연력 저하로 임신 내내 방광염과 캔디댜 질염이 나를 심심치 않게 괴롭혔기 때문이다.
출산예정일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라 한참 기대하는 맘으로 병원에 갔지만 우리 은우는 내 뱃속이 여전히 따뜻하고, 안전한지, 자궁은 2.5센치였지만 아이가 너무 잘 있어, 진통이 오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에 갑갑함이 밀려왔다.
그리하여 40주가 지난 5일째도 진통이 없어 더 이상 미루면 아기가 위험해진다는 말에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 유도분만을 결정했다.
유도분만을 한 30분 뒤 일주일 동안 2.5 센치 열린 상태로 버틴 자궁은 3센치로 현재 진행형으로 바뀌었고 이게 진통인건가 긴가 민가 한 사이에 바로 무통주사를 맞게 되었다. 진통인지 민망할 정도로 짧은 진통이었고 바로 무통주사의 천국 길 이후 자궁은 곧이어, 10센치까지 열렸다. 이제 힘을 주어 낳기만 하면 기나긴 10개월의 사투는 끝이 나는 것이다.
확실히 둘째라, 출산이 수월하겠구나 둘째 은우가 드디어 엄마 편하라고 효도하는구나 좋아했지만 왠걸
힘을 주세요!! 산모, 힘을 주셔야 해요. 간호사의 외침에 놀랐을까 힘을 주는 방법을 몰랐을까,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진통과 함께 내 몸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와 힘도 무통주사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남편 또한 힘이 생기지 않은데 힘을 어떻게 주냐며 , 마른 침을 삼키며, 애타게 지켜보고 있었다.
힘을 써야 할 산모가 축 쳐져, 2시간을 헤매다, 마지막으로 나 또한 아기를 위해 젖먹던 힘을 내보자며, 마지막 묵직한 것이 내려오는 듯한 느낌에 다시 한번 힘을 내, 뱃속에서부터 힘들게 한 은우를 출산했다.
고된 출산 이후 퇴원하는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다.
시어머니가 원하시는 아들이었고, 외모도 비교적 잘생겼다.
집에서 시어머니의 감탄사만 기다리면 되겠다며 속으로 신이 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돌아온 집은 예전 내 손길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첫째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싱크대 안에 살림살이 심지어 가구의 위치까지 내 집이 아닌 어머니의 손길로 재정비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5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또 다시 돌아가기 싫은 과거로
자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모멸감, 상실감, 무력감 까지 안겨주었던 그리하여 오열하게 만들었던 나날들
그때도 첫째를 낳았고, 더 이상 월세로 버티기 힘들었던 우린 시댁 2층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었다.
허나 이사 이후의 삶이 나를 이렇게 무력하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출산과 동시에 시댁집으로 이사는, 육아에 대해 신생아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던 서툴렸던 나에게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자존감이 바닥일수록 시댁과의 부딪힘은 심해졌다.
그리고, 정점을 찍었던 그날은 내가 출근하여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로 숨쉬는 공기마저 나를 괴롭게 하던 날이었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히스테리를 받을 동안,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내 20대 정든 옷들을 무더기로 버려버렸다.
‘연예인인줄 알았다며, 무슨 옷이 그렇게 많아 뭣에 쓰냐며’ 버렸다는 어머니, 그리고, 지금과 같이 어머니 스타일대로 정리정돈 되어있던 살림살이들...
한마디 상의없이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바뀐 환경들에 다소 황당하고, 황망하고 다시 한번 느꼇던 무력감에. 눈물이 났다.
다시 돌아가면 안된다는 무의식에 몸이 떨렸다. 허나, 난 이제 아이둘 가진 엄마이지 않는가,
5년전 사건이후로 난 시어머니와 크게 다투고, 시댁과 나의 거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다시 싸우고 거리를 두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첫 번째는 깍쟁이 아니랄까, 조리원 비용이 아까워 산후조리를 패스하고 바로 퇴원을 했던 나였기에 아들 은우를 시어머니 없이는 볼 수 없는 몸상태였다.
첫째때처럼 몸이 바로 회복할 줄 알았던 자신감과는 달리 몸은 하루하루 뚜둑 뚜둑 뼈소리가 났다.
두 번째는 시어머니와 나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만큼 우리 첫째딸 나은이가 할머니를 어려워했다.
시어머니가 키운 외손주와 달리, 시어머니를 따르지 않은 나은이. 항상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아 부모외에는 작은소리로 말하는 나은이를 시어머니는 탐탁치 않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은이 옆에는 늘 시어머니밖에 모르는 외손주들이 있어 당연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고 나은이는 외로이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제는 내가 굽혀야 할 때이다. 1년간의 짧은 육아휴직에 비해 다시 기다리고 있는 직장생활은 길고도 한참 길다. 그럼 은우에게는 이제 엄마보다는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들로 가득할 것이다.
그때, 할머니와의 애착이, 어린 은우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다.
내 심장소리를 듣고 내 뱃속에서 나의 양분을 먹고 켰던 사랑스런 아가야 너를 위해 향하는 발걸음이라 생각해다오,,,
회사에서 육아로 인해, 퇴사를 해야 했던 선배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워킹맘으로써 마음조리며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있단다. 아이가 울며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며 울고불고 했던 첫째딸 나은이의 모습, 회사에 지각하지 않으려, 나은이를 다그쳤던 출근 시간들.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이 엄마는 바란다.
첫째때는 시어머니께서 봐주신다는 제안을 거절해왔다. 아이를 떼어놓는 것만 같은 조바심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받지 못한 만큼 부족함 없이 사랑을 주고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워킹맘으로써, 가감히 포기하며 버려야 하는것들이 있기에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좀더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의 그릇이 커진만큼 ,2022년의 오늘의 나는 5년전 서툴기만한 내가 아니기에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몸조리와 아이를 지극히 돌봐주셨던 시어머니, 그리고 그 대면의 시간들이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의 쓰레기들을 하나 둘 쓰레기통으로 버리게 해주었다.
한번은 대화로, 한번은 차한잔으로 한번은 따뜻한 미역국으로,
이제 나는 괜찮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