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위대한 그 이름 “엄마”
- 등록일 : 2022-11-08 12:46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임미성
- 조회수 : 3065
허니문베이비 내 첫 아가
십년이 넘는 연애기간을 마치고 결혼을 한 우린 감사하게도 빨리 임신을 하게 되었다
신혼도 즐기지도 못하게 바로 아기가 생겨 당혹스럽긴 했지만 원해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 기쁨도 잠시 입덧으로 시작해 골반 통증 임당 등으로 임신 기간 내내 고생했다
엄마가 되는게 이렇게 쉽지 않구나를 느끼며 ..
임산부의 특권인 먹는 것에 대해 식탐을 절제하며 임당관리를 해왔지만 결국엔 예정일이 지나 부득이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진통 없이 출산을 하게 되니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서운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엄마라면 몇시간 진통해서 낳은 출산스토리는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제왕절개는 일시불이 아니라 할부라는 말도 있듯이
낳은 후에 통증이 말할 수 없이 컸다 . 정말 나는 몇일 말을 못했다 꽤 오랜 기간 수술 후 통증으로 고생했지만 수유하고 눈 맞추던 아이 얼굴 , 천사처럼 잠든 모습 들을 보며 힘든것이 사라졌다
출산보다 더 힘든건 육아
오래 다닌 직장에서 육아휴직이 없었는데 이례적으로 처음 휴직제도를 사용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행운아이기도 하고 처절한 싸움의 결과였다
당연하게 누려야 할 출산과 육아휴직이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이기에 가능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던 직장생활을 출산을 이유로 오랜만에 쉬게 되었는데 아이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때 차라리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정도로 육아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우는것 밖에 못하는 아기인데 왜 우는지 모르겠고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먹어야 하고 기저귀를 수없이 갈고 그냥 쉽게 잠을자는 일도 없었다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엄마로서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아 산후조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 중에 가장 고된일이 모유수유였는데 누가 대체할 수 없기에 더 힘들었었다 .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었고 나의 의지로 꿋꿋이 1년 동안 완모의 길을 걸었다
주변에서도 말렸지만 끝내 해낸 이유는 수유하며 느끼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격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단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듯이 벌써부터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너무 힘들지만 너무 기쁜게 육아라는걸 점차 느끼기 시작했다
너의 첫 사회생활
길게만 느껴졌던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가고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준비했다
미리 단유도 하고 유아식도 먹여가며 어린이집 갈 준비를 했는데 입학 시기와 복직시기가 맞물려 적응기간을 길게 둘 수 없었다
걸음마가 느려 돌이 지나도 아직 걷지 못해 말은 커녕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게참 마음이 아팠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적응 기간을 두고 바로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있어야 했기에 나도 아이도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 .. 육아해방이다!! 하고
자유시간을 누릴지 알았는데 아이를 두고 나오며 얼마나 오열했는지 모른다 마치 아이를 버린것처럼 내가 분리불안을 느끼는 것같았다
걱정도 잠시 사회성이 좋던 우리 아이는 웃으며 잘 놀고
무엇보다 잘 먹어서 원에서 생활을 잘 해냈다
워킹맘의 비애
1년 3개월의 휴직 생활을 마치고 복직을 했을때는 마치 처음 회사에 입사한 신입직원의 느낌이었다
리모델링한 어색한 사무실 모습, 새로 입사한 처음 보는 직원들 , 바뀐 내 사무실 자리 …
다들 그대로 인데 나만 동떨어진 굉장히 외로우면서도 어색한 하루 하루였다 .
다행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나와 남편은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이는 연장반에 맡길 수 있는 자격으로 원에서는 걱정말고 저녁까지 맡기시라고 했지만 알고보니 6시 이후까지 있는 아이는 우리 아이 뿐이었다
맞벌이가 그렇게 많다더니 다들 어떻게 6시 전에 하원을 하지? 좀 의아했다
원에서 벨소리가 나면 나를 데리러 왔나? 하고 현관문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렸을 아이 ..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있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참 많이 났다
결국 나는 직장이 멀고 퇴근도 늦은편이라 남편과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조금 빨리 하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 일을 하는 상황이라 아이가 아프거나 무슨일이 있었을 때는 참 곤란했다
아이가 이제 잘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기까지 할 시기에 원에서 아이가 넘어져 걷지를 못한다는 전화를 받았을때 가슴이 덜컹했다울면서 어떻게 병원까지 운전해서 갔는지 잘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도 가고 결국 골절되어 한달가량 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걱정이 되고 하필 코로나로 긴급한 일들이 많은데 직장에선 그런 배려가 없어 엄마로서참 힘들었다
건강해서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아이가 등원을 하니 아무래도 전염병에 많이 노출됬는데 열이 나서 하원을 해야 하거나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검사를 해야 하거나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나는 당장에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또 ? 왜 이렇게 자주 아파? 라는 반응으로 아이 가진 엄마는 죄인취급을 받았다
아이가 있는 여자는 일을 할 수 없는건가? 결국 그만둬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며 요즘 같은 시대에도 많은 제도가 있음에도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없다는게 참 서글펐다
엄마는 강하다
엄마가 된 뒤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지만
엄마라는 이유로 더 강해졌다
50키로도 되지 않는 엄마여도 10키로 넘는 아이를 한손으로도 안게 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갖은 수모도 겪으며 참아내게 된다
힘든 육아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뒤돌아서 후회도 하지만 이제 말을 하는 우리 아이가 나에게
잠자리에서 “ 엄마 오늘도 수고 했어” 라고 말해줬을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 나에겐 웃어주어서 예쁜게 아니라
아이가 울어도 말썽을 피어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인데 ..
엄마가 되어 보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해주며 아이를 통해 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해 보이지만 아이에겐 온 우주인 엄마를 보며 행복하길 바라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