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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수기공모> 남매둥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레시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소중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자녀에게 분유를 먹인 후 아이가 트림을 하고 바로 잠을 청한다든지,

어린이집 등원 전 머리를 잘 묶고, 옷을 갈아입는 게 원활히 진행된다든지,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갔을 때 뽀로로 과자 하나로 지출을 끝낼 수 있을 때라든지

 

소중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

아이와 함께 지낸 후 나의 일상을 뒤돌아보니 소중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겪었던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고생했어

신혼시절 일주일에 3~4번 회식으로 늘 만취되어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던 와이프

임신초기부터 입덧으로 고생하고입원 후 4일 간 유도분만 끝에 결국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한 와이프밤낮 할 것 없이 우는 아이 달래주며 틈틈이 남편 반찬 만들어 놓는 너에게 고마움을 전달한다.



봄은 누구에게나 새 출발을 의미한다. 2020614일 우리 트니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봄이 내포하고 있는 따스한 순간만이 육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트니가 50일이 될 동안 밤사이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타 먹이고 다시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 안아주는 건 오로지 우리 부부 몫 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다크서클 가득한 눈으로 떠나는 출근길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고, 업무에 찌든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이 하루 중 가장 지치는 순간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봄은 따스함보단 꽃샘추위와 같은 것이었다.



사랑의 속삭임

육아가 늘 힘든 순간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을 때쯤 트니 입에서 아빠라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주변 사람들은 육아로 찌든 너의 심신이 결국 환청에까지 이르렀다고 놀렸다. 그러나 나는 똑똑히 들었다. 배시시 웃으며 아빠라고 속삭이는 너의 목소리를.. 한번 더 듣기 위해 퇴근 후 매일 저녁 트니 앞에서 더 오버하며 육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 나의 환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 환청이 내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터닝포인트 였음은 분명하다.




미안함

우리 트니의 백일잔치를 위해 일가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경기도에서 광주까지 와 준 친척분들도 계셔서 감사함과 반가움을 숨길 수 없다 보니, 결국 장식장에 애지중지 모셔둔 양주를 꺼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우리 트니의 백일잔치를 기억하는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만취된 트니 아빠의 모습만 친척들 앞에서 회자될 뿐..



미안함2

트니의 백일잔치 같은 실수는 다신 안 하겠다고 다짐하며 야심차게 돌잔치 준비를 했다.

돌잔치 업체를 찾아다니며 꼼꼼히 비교분석을 마치고 드디어 돌잔치 디데이 3일 전.

갑자기 02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불길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으니 서울 영등포구청 직원이라고 하며 며칠 전 예식장에서 만난 친구가 확진자가 되어 2주 간 자가격리 하라는 내용이였다.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부랴부랴 돌잔치 업체,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을 이야기했다. 우리 딸과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격리하는 동안 방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결심

 도저히 이런 남편, 아빠로 살 수 없었다.

가뜩이나 출퇴근 거리도 멀어 우리 트니를 온전히 볼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와이프가 복직할 시기가 다가오니 더욱 더 고민은 깊어졌다.

그동안 아빠와 남편으로서 부족했던 모습을 만회하기 위해 결국 내가 휴직하기로 결심했다.


이해

복직한 와이프가 하필 교대 근무 부서에 배치 받았다.

우리 트니가 엄마 없이 잘 잘 수 있을까?

내가 목욕도 잘 시키고, 밥도 잘 먹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였다. ‘사람의 진심은 통한다 하지 않았던가?’ 내가 정성을 다해 노력하면

딸 아이도 잘 따라와 줄거라 믿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맛있는 반찬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도 준비해 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내 노력과는 다르게 밤만 되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고 투정을 부리는 딸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육아 선배들에게 물어보았다.

정성스레 아이에게 잘해주었는데, 왜 우리 딸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할까요?”

돌아오는 답은 그동안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이제야 알겠지? 하루 아침에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강요하면 애 또한 혼란스러울거다.”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겪어보니 와이프는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정말 힘들었겠구나..난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나에게 딸을 맞추려고만 하고 이 모든 게 사랑이라고 강요했다. 그러니 우린 늘 다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니 이제야 조금 딸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

일하는 엄마 덕분에 둘이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저귀와 과자 등의 짐을 챙겨 가까운 동물원과 집 근처 공원도 가고,

멀리 바다와 미술관도 보러 가고..

엄마가 그립고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 준 딸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후반전

2022.10.13.일 내가 애국자가 된 날이다.

와이프가 또 한번 10개월의 고생길을 견디고 둘째 아이를 출산한 날이기 때문이다.

와이프와 똘똘이(둘째 태명)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트니 어린이집 등원은 양가 엄마들이 도와주시고, 나는 일찍 퇴근해 하원을 담당했다. 부랴부랴 회사업무를 마친 후 아이가 잠들 때까지 씻기고, 밥 주고, 놀아주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중에 제일 힘든 점은 자기 전에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일이다.

그렇게 2주를 버텨 엄마와 똘똘이가 집에 오는 날이 다가왔으나,

우리 딸은 메타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일주일 간 아동병원 입원실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나름 지극정성으로 병 간호를 했으나, 엄마와 영상통화 할 때마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보며 참 마음이 아팠다.

우여곡절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새롭게 맞이하는 동생을 질투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우려와 달리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반갑게 맞이해준 딸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함께

그동안 나는 직장 상사 및 동료들이 편의를 봐 준 덕에 육아휴직,  육아시간,  유연근무와 같은 제도를 활용하여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느낀 점은

남편이 주인 의식을 갖고 육아에 함께 참여할 때 부부가 서로 싸우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앞으로도 일이 우선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 우선인 삶을 살며 자녀를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 시키고 싶다.

그동안 부족한 남편을 믿고 의지하는 와이프에게 감사함을 전달함과 동시에

퇴근할 때 웃음으로 맞아주는 내 딸과 이제 막 세상에 나와 건강히 성장 중인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을 전하며 이상 소소한 나의 행복한 일상 소개를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