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쌍둥이 아빠
- 등록일 : 2022-11-07 16:08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김수영
- 조회수 : 3220
애가 싫다.
엄밀히 말하면 무언가를 뒤치닥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싫다.
내 몸하나 건사하기 쉽지 않은 세상에 A부터 Z까지 그 모든 것을 챙겨줘야하는 존재가 부담이다.
작은 수고로움도 희생하기 싫은데 나를 갈아 넣어야 완성되는 자녀의 굴레가 버겁다.
없는 살림에 허리띠 졸라매고 아등바등 사는 것도 자신이 없고 가정이고 회사고 여기저기 치이는 삶도 감당하기 힘들다.
애를 줄줄이 달고 노심초사 애달아하는 부모를 볼때면 안쓰럽고 짠하기까지 하다.
애는 짐이요, 혹이라. 비혼, 딩크를 외치는 MZ세대 대표가 바로 나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나를 닮은 아기가 생겼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남매 쌍둥이.
가르마 방향부터 발톱의 반달모양까지 나를 쏙 빼닮은 꼬물이들.
분유는 3시간 텀으로 60도 100ml. 손등에 찍어서 온도 확인.
한 번에 주지말고 3번에 끊어서 중간에 토하지 않도록 적절한 기울기와 속도로 먹일 것.
다 먹고는 반드시 트림을 시킬 것.
2시간에 한 번씩 기저귀 체크. 끙아냄새 확인. 변의 묽고 진하고에 따라 건강 상태 점검.
엉덩이 무르지 않도록 파우더 및 리도맥스 발라주기. 물티슈 쓰지 말고 물로 씻어줄 것.
목욕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체온보다 살짝 높은 40도 미온수 준비.
연약한 살이 문드러질까 힘없는 목이 꺾일까 안절부절. 아이전용 목욕제품 해가되는 성분은 없는지 체크.
불긋발긋 피부에 가슴이 철렁. 행여 추울까 감기 걸릴까 젖은 머리 한올한올 드라이.
아기들이 드디어 잠을 잔다. 이제 좀 다리 뻗을까. 아빠도 눈 좀 붙일까.
아서라. 둘을 동시에 재우기 미션. 하나를 재우면 하나가 깨고 하나가 깨면 하나는 잔다.
추울까, 더울까, 뒤집어질까, 숨이 막힐까 24시간 경계태세. 쌔근쌔근 잘 자다가도 한 놈이 ‘으앙’ 울면 다른 놈도 ‘으앙’. 환상의 하모니.
하지만 동그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소로 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서,
옹알옹알 알 수 없는 말 중에 섞여나오는 ‘아빠’라는 생경한 단어를 들으면서,
따뜻한 체온과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내는, 날 닮은 또 다른 나를 보면서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벅찬 행복을 맛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딸랑이를 쥐지 못했던 고사리같은 손을 오늘은 제법 흔든다.
가만히 들어보니 박자를 맞추는 것 같기도. 리드미컬. 혹시 천재 아냐?
속눈썹이 유난히 길다. 짜식. 아빠 닮아 눈썹이 찐하다. 나중에 인기가 너무 많으면 어쩌지?
시집, 장가는 어떻게 보내나. 벌써부터 걱정되는 팔불출 아빠.
발가락을 자세히 보다보니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발냄새도 곱다. 원래 살냄새인가?
자고 있는 모습을 한참 들여다 봤다. 볼수록 신기하다. 저렇게 조그마한데 눈, 코, 입은 다 있다.
앙증맞은 배꼽이 오르락 내리락 숨도 쉬고. 가끔씩 찡긋거리는 미간이 귀엽다. 무슨 꿈을 꾸나? 아빠미소 발사.
‘따르릉’
‘왜이리 연락이 안돼? 요새 머하고 사냐? 간만에 술도 마시고 회포 좀 풀자. 나와.’
친구놈의 전화에 예전 같았으면 쾌재를 불렀을 테지만 이제는 영 땡기지가 않는다.
부어라 마셔라 의미없는 수다보다는 우리 아기 얼굴 한 번 더 보고 엉덩이 한 번 더 토닥이는 것이 훨씬 즐겁다.
쌍둥이는 어느덧 100일의 기적, 첫돌을 지나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6살이 되었고.
아빠는 금연한지 7년, 금주한지 3년째인 육아고수로, 애없이 하루도 못사는 딸바보, 아들바보로.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자식 예찬론을 펼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