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체험수기] 행복했던 돌잔치와 혹독했던 돌치레
- 등록일 : 2022-11-03 20:56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이희라
- 조회수 : 5287
행복했던 돌잔치와 혹독했던 돌치레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1년,
크게 아픈데 없이 잘 먹고 잘 자며 성장하던 아기와
먹이고 재우고를 철저한 계획 속에 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양가의 첫 손자인지라 가족 모두의 첫사랑이 되어준 아기
그런 아기의 처음 맞이하는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자
거창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나마 가족만 모이는 돌잔치를 준비했다.
나는 모든 일을 계획대로 하는 스타일이고,
계획에 대비한 결과로 희로애락을 느꼈던 사람이기에
내 육아 역시, 모든 것을 기록하여 분석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짰었다.
돌잔치 하루 전날 저녁,
우리 아기는 잠들면서 코가 막혀 숨을 쉬기 힘들어했다.
그러고는 바로 콧물이 나오고 미열이 있었다.
접종열조차 없던 아기인데, 이때부터 우리는 당황했다.
돌잔치 당일,
오전 낮잠을 반드시 재워야 하는 특명을 세우고
우리의 외관을 단장했는데, 웬걸 낮잠을 안 잔다.
결국 낮잠을 건너뛰고 돌잔치를 강행하게 되었다.
가족 모두는 아기의 모습에 시선을 모아 웃고 있는데
아기는 돌잔치 내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불편한 드레스와 모자를 걸치고, 난생처음 신발까지 신고서..
그렇게 남들처럼 정신없이 돌잔치가 끝이 났다.
그런데 그날 밤, 아기의 몸이 불덩이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상황은 계속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이유식도 분유도 먹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부모인 우리 몸 상태까지 안 좋아지기 시작,
우리는 약국과 편의점을 털어 비상약으로 조치하고
새벽 내내 셋이서 끙끙 앓으면서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침이 밝자마자 내 정신이 없으니 아기를 챙길 자신이 없어서
나부터 이비인후과에 달려가서 주사 한 방을 급하게 맞고 왔다.
아기와 아동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픈 아이들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는 아동병원에서 온 가족이 진료받을 만큼 힘든 상태였다.
아기는 당장 입원치료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 했다.
입원 절차를 거치면서 아기는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았다.
그리고 피검사와 수액 바늘 등 온갖 뾰족한 것에 찔려댔다.
검사 결과는 아기들이 돌 즈음부터 흔하게 겪는 돌치레였다.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체계가 깨지면서 나타나는 것이란다.
며칠 경과를 보면 금방 좋아질 줄 알았는데
기침으로 토하고 겨우 먹인 약까지 토해내는 바람에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병원에 머물게 되었다.
그동안 이유식을 거의 남기지 않는 먹순이 아기에게
이유식을 집에서 단계별로 만들어 먹이며 뿌듯해 했는데,
다시 첫 단계로 고운 쌀가루로 만든 미음을 줘야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은 게 여러 가지 있다.
그동안 내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육아해 왔다는 것
다행스럽게도 그간에는 아기가 잘 따라와 줬지만
아프면서는 그 계획대로 시행하기 힘들어졌다.
분유와 이유식을 먹은 시간, 먹은 양은 물론이고
낮잠 시간, 낮잠 간격과 횟수, 소/대변까지….
일정하게 규칙적인 그래프가 그려진 날은 마음이 벅찼고,
들쑥날쑥 틀어진 그래프에는 하루가 통으로 속상했다.
내가 이유식을 만드는 날에는
반드시 저울질하여 만들고 계량컵 또한 필수였다.
정해진 양을 제시간에 꼭 먹여야 했고
하루에 먹은 양이 일정한 수준을 넘기라도 하면
비만의 위험이 있다며 제한을 뒀다.
이제 태어난 지 갓 일 년이 된 내 아기,
이 아기에게 내가 무슨 틀을 끼운 걸까?
아기를 잘 키우려는 나름의 방식이었는데
아기를 힘들고 아프게 한 것만 같아서
며칠 내내 마음이 무척이나 안 좋았다.
아프고 난 뒤로는 아기의 일과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더 많이 눈 마주치고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아기와 함께한 일상이 나의 삶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사실상 면밀하게 기록하는 의미도 크게 없었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고 못 놔주었나 싶다.
주변에 육아를 시작하는 가정이 있다면 꼭 조언하고 있다.
육아 일과를 기록하되 그 기록에 목메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우리가 혹독하게 치뤘던 돌치레를 에피소드 처럼 떠들며 말이다.
이제 천천히, 차근차근, 회복해 가야겠다.
아프면서 첫 입원 생활하며 걸음마를 떼 버린 아기가 대견하다.
아팠던 만큼 아기도 우리도 그렇게 한 뼘 성장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