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기공모] 쌍둥이의 백일
- 등록일 : 2022-11-02 20:20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고병균
- 조회수 :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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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참가자 : 고병균(010-5663-5060)
아기와 관계 : 아기의 외할아버지
[ 쌍둥이의 백일 ]
새벽 4시가 조금 넘었을 때이다. 외할머니가 사율이의 우유를 타서 들고 왔다. 그러나 서율이는 숙면 중이다.
하율이는 아빠와 단둘이 잔다. 엄마는 림프샘에 종양이 생겨서 검사 받으러 갔다.
어제 서울로 올라가서 오늘 점심때쯤 내려온다. 세 번째 검사로 결과는 28일(수)에 나온다.
딸은 ‘결혼하지 않는다.’ 고 우겼다.
그런 딸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는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내 가슴을 태웠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쌍둥이를 낳았다. 결혼 7년차에 낳은 딸이다. 그것은 순전히 사위의 끈질긴 설득 덕분이다.
딸이 쌍둥이를 낳은 것은 7학년인 나에게 중대 사건이다. 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딸은 그 삶이 오로지 자기중심이었다. 그런데 쌍둥이가 태어난 후로 딸의 삶이 아기 중심적인 삶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진지해졌다.
쌍둥이가 딸에게 미친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나의 영향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제 저녁 8시경 우유 140ML를 먹은 서율이가 9시경에 딸꾹질을 시작했다.
기저귀가 젖었나 하고 들추어보아도 이상이 없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멈추게 하려고 서율이를 어르고 달래고 울음을 울게도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자주 하고 그 소리도 더 커졌다. 하는 수 없이 우유 20ML를 타서 먹였다.
꿀떡꿀떡 잘도 먹는다. 심하던 딸꾹질도 어느새 멈추었다. 참 신통하다.
서율이는 우유 먹을 때만 나에게 온다.
트림을 시키려고 하거나 잠을 재우려고 하면 외할머니를 찾는다. 그것이 참 신통하다.
우유를 먹은 서율이가 머리를 내두르며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아직 배가 덜 찬 모양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제 엄마는 ‘비만이 온다.’고 하며 정량만 먹이라고 한다.
아, 나 갓난아기 시절과 비교된다. 그 시절에는 우유가 없었다.
아기의 식사는 오직 엄마의 젖뿐이었다. 산모에게 미역국이 최고다.
거기에 닭고기라도 들어가면 금상청화다. 그러나 나의 생모에게 그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산모는 이처럼 배가 고팠다. 아기도 따라서 배가 고팠다.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기,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채 젖꼭지만 물렸을 나의 어머니 충주 박씨,
그 안타까움이 비수처럼 날아들어 내 가슴에 꽂힌다.
70여 년 전, 이렇게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아기의 비만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누가 이 나라를 부자 나라로 만들었는가?
그 어려운 환경에서 아기를 낳고, 그들을 산업 현장의 역군으로 길러낸 당시의 어머니요,
갓난아기 시절부터 배고픔의 서러움을 극복한 베이비 세대들이다.
이분들이 밤낮없이 흘린 땀의 대가로 대한민국은 먹을 것이 풍족한 부자 나라가 되었다.
나는 이분들을 향하여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라고 일컫는다.
이야기가 곁길로 흘렀다.
서율이는 숙면 중이다. 외할머니가 '서율아' 하고 불렀다.
반응이 없다. 몸을 흔들어본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오줌이라도 쌌나? 하고 기저귀를 들춰보았다. 보송보송하다.
낮에는 3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던 서율이가 무려 7시간이 넘도록 숙면 중이다.
이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어쨌든 우유를 먹여야 한다. 지금 먹이지 않으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
서율이를 무릎에 앉히고 우유 꼭지를 물렸다. 오물오물하더니 쪽쪽 빨아 먹는다.
잘도 먹는다. 숨을 쉬어가며 지혜롭게 먹는다.
서율이는 우유 먹을 때만 내 무릎에 앉는다. 잠이 들려고 할 때나 트림을 시킬 때 내가 안으면 몸부림하며 외할머니를 찾는다.
외할머니는 서율이에게 껌딱지다, 누군가를 좋아하여 졸졸 따라다니는 껌딱지다.
반면 외할아버지는 우유 먹을 때만 찾는 서율이의 밥상이다.
미숙아로 세상에 나와 겨우 백일 살았는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구별한다? 그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서율이가 우유를 다 먹였다. 우유병을 거꾸로 세웠더니 꼭지 끄트머리에 한 방울 남아 있다.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주었더니 빙그레 웃고는 스르르 잠이 든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깨물어 주고 싶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니, 나의 어머니 충주 박씨의 마음이 느껴진다.
쪽쪽 소리 내며 젖 빠는 서율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다. 아니다. 더 진했을 것이다.
트림을 시켜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럭무럭 자라라’ 중얼거리기도 하고, 등을 도닥거리기도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창밖이 환하게 밝아온다. 쌍둥이의 백일을 축하라도 하듯 7월의 아침 해가 찬란하게 떠오른다.
나는 기도한다. 쌍둥이를 위해 기도한다.
서율아, 예쁘게 자라라. 하울아, 용감하게 자라라.
아침 해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건강하게 자라라. 지혜롭게 자라라.
나의 어머니처럼 나도 그렇게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