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체험수기공모]세아이의 엄마가 되어
- 등록일 : 2022-10-27 02:14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서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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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친구들보다 조금은 빠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처음 결혼하고 살던집은 내가 결혼전부터 산 15평에 거실이 조그맣게 있는 30년 이상된 오래된 아파트였다. 남편은 대학교 학자금 대출이 그때까지도 남아있던 상태여서 신혼임에도 새로운 가전하나 장만하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살았던 우리는 뱃속 첫째가 7개월 되었을 때 대출을 다 갚았고, 그날 삼겹살 파티를 하며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시작하던 11월에 첫째를 낳았는데 첫째라 모든것이 서툴고 조심스러웠다. 이 작은 아기가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봐 안절부절하며 모든 것이 세균덩어리처럼 느껴져 손도 하루에 50번 이상은 씻었던 것 같다. 목욕시킬 땐 외풍이 심한 욕실에서는 도저히 씻기기 어려워 따듯한 물을 받아 들고나와 비좁은 주방 겸 거실에서 씻겼다. 아기가 감기라도 들새라 후다닥 씻기면서 정작 남편과 난 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첫째를 키우면서 남편도 나도 점점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
첫째가 4살 되던해에 둘째가 태어났고, 동생을 낯설어하며 밉다고 말하고 밤에 이불에 쉬를 하며 자꾸 퇴화되는 행동을 보이는 첫째에게 따듯하게 더 안아주기는 커녕 혼을 많이 냈다.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때 아이둘을 키우는 것이 정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다.
매일 어린이집 하원차량에서 잠이 들어 내리는 첫째를 둘째 아기띠한 상태로 안아 유모차에 눕히는 것이 정말 힘들어서 하원시간이 다가오는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 옛날 친정엄마는 연년생인 우리를 어떻게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데리고 다니며 키웠는지...새삼 친정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이둘을 키우며 4번의 이사를 하고, 9살 6살 이제 제법 둘다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들과 가끔 수다도 떨며 ‘아 이제 다키웠나...?’느끼던 어느날, 몸이 으슬으슬하고 감기기운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두줄!! 기쁨보다는 너무 당황해서 머리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난 절대 낳고 키울 자신 없다고 남편에게 화를 냈는데 남편은 사실 셋째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터라 너무 기뻐하며 많이 도와주겠다고 무릎까지 꿇고 약속했다. 그렇게 셋째를 낳기로 결정하고 첫째 둘째에게도 알려주니 동생이 생긴다는 것이 마치 애완동물 하나 생기는 느낌이었는지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보름달이 뜨는 추석에 셋째의 존재를 알게 되어서 태명을 ‘달이’라고 지어주었다. 셋째는 사랑이라더니 태명을 짓고 나니 새삼 뱃속 아기가 벌써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첫째 둘째 큰옷을 사다가 작고 귀여운 셋째 옷을 하나둘 사모으며 임신기간동안 정말 행복했고 만날 날이 더욱 기다려졌다.
셋째를 출산하고 처음 얼굴을 보고 진짜 깜짝 놀랐다. 처음본 셋째 얼굴에서 첫째 둘째 아기때 모습이 보였다. 유전자의 신비란...ㅎ 조리원에서 아이들이랑 영상통화를 하는데 동생이 너무 궁금하고 보고싶다며 언제 집에오는지 전화할 때마다 물었다. 첫째는 셋째 출산소식을 학교선생님, 학원선생님, 친구들 등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생사진(출산의 고통에 일그러진 나와 셋째가 함께 처음 찍은 굴욕사진)과 함께 카톡으로 알려주어서 10살 첫째 친구들까지도 아기 낳은 것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10살 7살 그리고 신생아 아이셋을 나란히 앉히고 기념사진을 찍으니 옛날 첫째를 낳았던 그 15평 허름한 집에서 살던 남편과 내가 지금 이렇게 나름 번듯한 집에서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다니...하는 생각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가슴이 벅찼다.
아이셋을 어찌 키울까 솔직히 출산전에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외로 첫째 둘째가 터울이 있는 동생이라 그런지 동생을 너무 예뻐해주고 정말 많이 도와주었다. 자기 스스로 목욕하는것도 서툴렀던 첫째는 둘째 목욕까지 시켜주는 엄마같은 누나가 되었고, 어리광이 많았던 둘째도 기저귀며 물티슈를 척척 갖다주고 셋째 공갈젖꼭지가 떨어지면 다시 물려주며 동생이 귀엽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의젓한 오빠가 되어 제법 오빠노릇을 하고 있다. 또 셋째가 잘때는 아기 깨니 서로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며 배려심도 스스로 알아가고 있다.
친정과 시댁에서도 처음 셋째 소식을 들으셨을 땐 38살 노산인 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영상통화를 해도 다들 셋째만 찾으신다. 바라보시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보며 셋째를 낳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는 둘째랑 셋째가 아파서 함께 입원을 했는데, 추수철이라 바쁘신 친정엄마가 셋째를 위해 모든 농사일을 제쳐두고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이제 5개월밖에 안된 셋째가 우리가족에게 주는 영향력이 이렇게 크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셋째출산을 준비하며 경제적인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몇 년전 보다 출산정책도 크게 달라져서 놀랐다. 출산시에 나오는 축하금도 많이 늘었고, 매달 나오는 각종 수당 등 지원금도 커져서 휴직중임에도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한결 부담이 줄었고 셋째가 복덩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가끔은 내가 세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그리고 주말부부라 혼자 아이셋을 돌보는 것이 힘들때가 사실 더 많다. 영화 씽에 나오는 '로지타'라는 엄마돼지가 자식들을 힘들게 키우면서도 가수의 꿈을 잃지 않고 부르는 노래에 엄청 감동받았었는데, 육아하며 정말 힘들때는 로지타가 불렀던 ost를 흥얼거리며 극복해보려고 노력한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정말 정말 크다는 것.아이가 하나보다 둘일 때 둘보다 셋일 때 세배가 아닌 그 이상의 기쁨이 되는 것 같다.아이 셋 낳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올겨울 우리가족이 다섯이 되어 맞이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얼마나 행복할지 정말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