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아이키움

회원가입

광주아이키움 전체메뉴

[육아체험수기공모] 우리인생 220917 전과 후로 나뉘다

21.10.16.  하나밖에없는 나의 단짝 아름이와 결혼을 맺어 4 연애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어릴적에는 자연임신이 쉬운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그래도 나와 아름이는 결혼  나의 태몽인 “꿀벌”  함께 예린이와  만남을 가졌다태명은 봉봉이 였다처음에 태명 부를때 설렘과 떨림과 부끄러움 조금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10달동안 나는 그대로지만 우리 아내 아름이는 점점 곰돌이 푸우가 되면서 봉봉이를 잘품어줬다본인의 몸과 살을  내주고 젊음을 봉봉이한테 주면서도  번도 불평하지 않고 우리 봉봉이를 뱃속에서 계속 불러주고 예뻐해주는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게 예뻐보여 감동에

벅차 아내 몰래 눈물을 훔친적이 많았다그렇게 220917 14:29 우리 봉봉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우리 부부의 인생은 이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

입원실에서 부터 조리원까지 생활하면서 느꼈던점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신병 훈련소 같았다(지극히 남자관점)

신병 훈련소는 1주에서 4주까지 남들이 봤을  단순히 기간이지만 같은 신병일지라도  몇주 차냐에 따라 서로가 바라보는 서열이 나뉘었다.

임산부 또한 그런것 같다배가 볼록한 임산부는 완전 신병 기분이였으며 (물론 둘째이상 임산부는 말년병장급!) 배가 살짝 들어가고 여유로운 환자복 여성분들은 출산여성으로 부러움의대상이였던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진 여담이였지만  느낌을  말해보고 싶었다.

우리 봉봉이의 이름은 남예린으로 정했다정한 시기는 조리원에 있을  였으며 이때 당시 우리 봉봉이의 이름은 20번이나 지웠다 썼다 했다그중 우리 둘다 쌍따봉을 치켜든 이름이 남예린이였으며 슬기롭고 맑은 아이가 되어라는 마음으로 지어줬다

이렇게 조리원의 생활이 끝나고 야전배치 당일이 왔다 이때 퇴소 했을때 기분은 잊을  없다예린이를  카시트에 태워 집까지 모시고   조금만 흔들려도 서로 “오오오오” 이러면서 괜찮냐고 말도 못하는 예린이한테 물어보기도 했으며 최대한 평평한 길로 갈려고 눈을 부릅뜨고 운전해야 했으며 시속은 정말 걸어가는게 빠를 정도로 천천히 느리게 갔다

그렇게 무사히 따뜻한 우리집에  모시고 왔으며  때부터 우리의 인생은 바뀌었다.

첫날예린이 분유를 타는 과정에서 나름 빨리 먹일려고 의욕이 앞서 칵테일 섞듯 위아래로 사정없이 흔들어서 줘버렸다

첫날저녁에 셋이 침대에서 잘때 예린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조금만 흐엑 해도 우리 둘은 바로 자동반사로 일어나 졸린눈을 부릅뜨고 예린이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동태를 살폈다

둘째날장모님이 처음 오셨고 정말 구세주가 나타났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덕분에 따뜻한 밥을 천천히 먹을 수있었다.

셋째날, 예린이가 붉은 고구마가 되어가면서 울기 시작했다 발버둥 치면서 울고 숨도 안쉬면서 울었다너무 당황했으며 너무 무서웠다그래도 의지할  있는 아내 아름이가 있어 서로 위로 했다이때부터 우린 집중적으로 공부 했다가나다라 한글 배우듯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유튜브 맘똑티비권형화 원장하정훈의 삐뽀삐뽀   정독  결과 우린 완전 초보 중 생초보였으며 잘못했던 사실을 알고 난 후 예린이한테 미안해서 눈물이 주르륵 났다

우리 부부가 실수했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몇가지 적자면 아래와 같다첫째 분유통 마다 스푼 크기가 다르며 작은스푼 1번이 20 이며 큰스푼 1번이 40 이였다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80 맞출려면 4번만 넣자고 생각해서 그때  분유통이 큰거여서  스푼을 4 넣은거였다그것도 2일동안 그렇게 먹인거였다정말 무지의 끝을 달린 우리 부부.. 아무리 수포자 문과생부부여도 이건 선을 넘어버렸다

둘째 분유 섞을 때는 좌우로 살살 돌려며 섞어야 하는데 위아래로 사정이 흔들어서 주는 것이였다이러면 공기가 가득 차서 아기한테 매우 안좋다는 

셋째 젖꼭지를 야무지게 끝까지 넣어야하는데 어설프게 넣어준점이다.

넷째 젖병도 결합하는 방법이 있었다젖꼭지랑 젖병을 결합  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는데 너무 쉽게 본거였던걸까그냥 쑤셔서 힘으로 결합했던 것이다.

이게 대표적인 네가지이며 이것말고도 너무나 많은 실수들이 있었다 모든 것들이 종합해서 예린이의 배앓이의 원인이  것이였다미안해 예린아  글을 쓰면서도  아빠는 회개하고 있단다.

이렇게 좌충우둘 콩볶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린이는 어리고 서툰 부모 밑에서 아주 강하게 자라줬으며 발열황달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다가 폭풍전야라고 생각해야됐을지 모른다 고요했던 시간은 끝이나고 말로만 듣던 “원더윅스” 시기가 찾아왔다처음에  시기를 검색했을  원더윅스 시기는 아기가 처음 엄마 뱃속에서 나와 시각과 청각  기타 감각들이 깨어나는과 동시에 무섭고 두려워서 운다는 것이였다이유를 알고 나서 내가 해줄  있는건  해줬는데 마냥 우는 예린이한테 살짝 아주 살짝 짜증이 났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우리는 오로지 예린이에게 모든걸 맞추면서 살아가는 중이다작은 예로 밥그릇도 사기그릇에서 플라스틱 그릇으로 바꿨다이유는 엄마아빠는 바로 알거라 믿는다.

이러면서 나와 아름이의 결속력은  단단해졌으며 서로  아껴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이뻐해주고 있다.

엊그제 장모님께서 예린이를 혼자 보실수 있다고 하셔서 우리 둘이 오랜만에 마트를 갔다 짧은 시간이였지만 아름이와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다닐   기분은 연애초로 돌아간 기분이였다.

예린이가 태어난  우리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다시한번 느꼈으며 길거리 마주치는 모든 부부에게 쌍따봉을 치켜들며 존경을 표한다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존경받을만 하다 물론 아빠들도 마찬가지이다

40일이된 우리 예린이 잘커줘서 고맙고 40일동안 고생해준 아내 아름이게게 고맙다

오늘도 예린이는 커가고 있고 우리 또한 성숙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