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로 자란 우리
- 등록일 : 2023-11-18 12:02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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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를 임신했을 때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이하 한살림)에 가입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이고 싶었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고자 하는 가치가 맘에 들었다.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회사생활도 서울생활도 접고 남편이 사는 광주로 내려와 문흥동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첫째를 키우면서는 고립무원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또래보다 한참 늦은 30대 중반에야 결혼했고 대학교 시절의 친분만 남아있는 광주에 함께 할 육아동지는 없었다. 같은 라인에 아이 키우는 집 몇몇은 서로를 탐색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겨우 아이 돌이 가까워서야 친해졌다. 함께 산책을 하다 만난 동네의 또래 육아맘들과도 친해져서 한결 외로움을 덜었지만 서로 다른 점이 많아 아쉽기도 했다.
<햇살로 자라는 아이들(이하 햇살아이)>은 첫째가 두 돌 안되었을 때 만들어진 한살림광주 북구매장의 육아소모임이다. 임신했을 때 읽었던 책의 저자처럼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엄마들과 함께 육아모임을 만들어보자는 문자를 받았을 땐 어찌나 설레던지. 한살림이라는 공통분모는 컸다. 결혼 전 TV에서 봤던 공동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어느 순간 로망이 되어있었는데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모유를 먹는 아가들 속에서 혼자 이유식을 먹고, 기어다니거나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들 속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는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갑자기 일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육아모임이 이렇게 유야무야됐다.
둘째를 낳기 전 한살림 식생활강좌를 들으러 갔다가 그녀들과 마주쳤다. 둘째 백일이 지난 즈음, 햇살아이 2기를 만들어보면 어떠냐는 제안이 그들에게서 왔다. 1기 아이들은 이제 바깥 놀이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함께 할 아이들은 아직 뱃 속에 있거나 백일도 안되어 노는 반경이 다를 거라 2기를 만들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과 예비모임을 갖자는 것이다. 그렇게 예비모임을 갖고 1기와는 또 다른 지향의 2기가 탄생했다. 발도로프 교육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한살림광주의 여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1기에 비해 우리는 좀 더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문흥동에서 택시를 타고 예비모임을 다녔던 나는 매장이 있고, 대부분의 햇살엄마들이 사는 일곡동으로 이사했다.
처음 다섯 집 정도로 시작했던 예비모임의 인원에서 이제는 열 명이 넘는 엄마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함께 했다. 먹거리도 생활의 지향도 닮은 데가 많은 친해지는 게 어렵지 않았고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서울의 성미산 공동체처럼, 광산구의 햇살가득어깨동무어린이집처럼 지속가능한 육아공동체를 만들 꿈에 부풀기도 했다. 우리 중에는 이미 초등대안학교를 설립하는 데 힘쓴 여인, 어린이집 원장 자격을 갖춘 이도 있어서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막상 시도하려고 보니 정부가 인가하는 어린이집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각자 부담해야 할 재정적인 부분도 만만치가 않았다. 우선은 제 코가 석자였다. 2주에 한 번 하는 모임에도 아이가 열이 올라, 다른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을까 염려되어 나오지 못하거나 뭔가 마음에 안 맞으면 주먹과 발이 먼저 나가는 아이가 행여 다른 아이들을 때릴까봐 못 나오는 엄마, 예전의 나처럼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못나오는 엄마 등 변수가 많았다. 모임을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내일의 일을 진행할 시간은 물론 힘도 인력도 없었다.
원대한 꿈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모임은 계속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는 함께 돌상에 오를 음식을 해와서 아이들이 돌을 맞이하면 돌잔치를 했다. 돌잡이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가 손에 움켜 쥔 미래를 함께 축복했다. 돌잔치 날이면 1기 엄마들도 꽃과 음식을 들고 와 축하해주고 한살림에서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더 나은 사회,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마음이 담긴 세월호 천일 순례에 유아차를 끌고 가기도 했고, 육아맘들을 위해 요리강좌를 따로 진행해 주는 등 한 살림생협의 소모임이기에 가능했던 혜택도 누렸다. 엄마의 이유식을 잘 안 먹는 아이에게는 요리를 잘하는 다른 엄마의 이유식을 나눔하고 조리법도 공유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먹일 백김치를 함께 담근 적도 있다. 방학이 되면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곡에 가거나, 어린이문화전당에서 함께 놀거나 동네 분수대나 유아 풀을 만든 집에서 함께 놀았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마련해오고 놀거리를 마련해 아이들도 엄마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계절이 바뀔 때면 아이들 옷이나 신발도 나눔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결혼 전 TV에서 봤던 공동육아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체계적인 공동육아 프로그램이 상시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은 것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욕심이 컸던 것 같다. 내가 첫째를 키울 때 느꼈던 고립무원의 외로움이 육아동지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가 되었다. 가장 치열했던 두 돌 이전까지는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느라 바빠 육아품앗이를 할 엄두도 못냈지만, 아픈 아이와 고생하는 엄마를 응원했고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엄마의 노고를 잘 알기에 아이의 생일이면 아이에게는 축복을 엄마에게는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전했다. 가정생활에서 부부끼리의 관계,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도 삐긋거림이 많은 시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고 육아상담이나 가정 상담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육아모임이 1년을 넘겼을 때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엄마들의 응원 속에 수술과 항암, 요양의 시간을 보냈다.
나의 둘째는 또래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기색이라고는 없는 엄마 껌딱지였다. 다른 엄마들에게 웃어주는 것도 인색했다. 이 아이에게는 엄마만 필요했고 또래 친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모임의 일원이었고 이끔이로 계속 활동했다. 바깥에서 놀아야만 하는 첫째와 엄마와 집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은 둘째 때문에 병원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된 내가 힘들어할 때 가까이 사는 두 여인이 구원의 손길을 보냈다. 장마철 어느 오후 이제는 함께 노는 맛을 알게 된 둘째까지 합류해서 킥보드를 타고 맨다리로 뛰면서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았던 아이들의 반짝임, 각자 싸 온 간식을 나눈 따뜻한 순간이 내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셋째를 낳고 박사학위 준비를 하느라 힘든데 이사하고 얼마 안 되어 발까지 다쳐 삼중고를 겪는 여인을 위해 북구의 끝자락 일곡동에 사는 사람들이 서구 금호동까지 가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응원의 마음을 안겨 주고 온 일, 한살림 소식지에 실린 우리의 인터뷰 속에서 우리가 함께 누렸던 연대의 깊이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된다. 집이 전소되어 망연자실한 왕언니를 위해 한살림 조합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엄청난 양의 옷과 생필품이 모았던 일은 이례적이지만 지극히 한살림적이기도 했다. 망연자실한 마음, 그럼에도 계속 회사에 나가 업무를 해야 하는 언니를 대신해 우리는 물품을 정리하고 임시로 거처할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나누었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는 도움받지 못했다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는 우리 역시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남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 육아 동지의 일이기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우리는 그녀를 이해시켰다.
아이들이 각자 어린이집에 갈 무렵, 늦게서야 합류한 엄마와 아가들과 함께 우리는 엄마의 몸과 지구를 덜 고생시키는 활동으로 활동의 방향성을 바꾸었고 그 활동도 그 이듬해인 2019년 가을 마무리됐다. 햇살아이 3기 모집은 지지부진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이어갈 엄마들이 나타나주지 않았다. 이듬해는 사회로 복귀할 인원들이 많아져서 모임을 계속하기도 어려웠고 모임을 이끌어 나갈 사람도 마땅찮았다. 가치 있고 지속되어야 할 것 같은 모임이 왜 중단되었는지 그전에는 잘 몰랐다. 그 모임이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한 그 한 때로도 충분하다는 걸 겪어보니 알겠다. 우리는 이제 단톡방을 통해 안부를 전하고 가끔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서 현재를 이야기한다. 치열하게 함께 하던 시기는 지나갔지만 우리의 연대는 끝나지 않았다. 아이도 우리도 함께 햇살 속에서 자랐고 자라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