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아빠와 간호사 엄마
- 등록일 : 2023-11-14 21:16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김형우
- 조회수 : 1258
로(분노)
퇴근시간이 되기도 전에 전화가 온다. "퇴근하고 바로 올꺼지? 얼른와". 회식이 있다는 말에 서운함을 숨기지 않으며 육아로 인해 힘들다는 하소연을 한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변명아닌 변명으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면 아내는 폭풍 잔소리를 쏘아 댄다. 신혼 초 첫째 아이를 키우는 우리 가정은 행복하지 않고 매일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산후도우미 선생님까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고 아내가 해야 할 일을 도와주시는데 뭐가 그리 힘든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황을 바꿔 내가 육아를 한다면 애들 넷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애(슬픔)
아내의 복직과 함께 평온했던 첫째의 육아는 우리 부부사이의 갈등과 함께 폭발직전이었다. 아내는 업무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일에 집중하다보니 육아와 집안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 상의하에 남은 육아휴직기간을 모두 사용하고 퇴직하기로 하면서 그나마 다시 평온한 육아를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둘째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외벌이 가정에서 둘째까지 생기는 우리 부부는 가족회의를 통해 둘째 출산 후 제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가 취업을 하기로 했다. 당시에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는걸 찾기도 힘들었으며 회사에 말하기도 힘들었다.
육아를 전담하고 집안일과 반찬도 만들어 보면서 아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5시만 넘으면 아내에게 바로 집에 올 수 있는지 물어보는게 일상이었다. 조금만 늦더라도 얼마나 서운하고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온전히 집에만 있는 시간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으며 내가 만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나만 힘든건 아니었다. 아내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모유를 짜내느라 매우 힘들었다.

락(즐거움)
한번은 아이 셋이 모두 독감에 걸렸을 때 입원아동돌봄서비스를 이용하여 주간에는 여사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육아 레벨이 상승하였다. 이제 아이가 셋이다. 집에서 아이 셋을 키우고 집 앞에 산책도 혼자 나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팀장이 되면서 일도 많아졌고 아이가 셋이니 집안일도 많아졌지만 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 주민들을 모두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딸 셋 키우는 아빠로 유명하다.

희(기쁨)
아기띠에 셋째를 메고 회사에 찾아갔다. 육아기근로시간단축근무를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생소한 제도였지만 회사측의 배려로 인해 육아단축근무를 현재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딸 넷을 키우는 아빠로 거듭나게 되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주간에 짧게 근무하는 나를 보고 백수로, 육아시간을 사용하여 4시면 퇴근하는 엄마를 보고 간호사로 소문이 났다. 10살, 9살, 7살, 3살이 된 딸들은 아직도 도움이 필요하지만 힘들기보다는 즐겁고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살고, 현재도 희로애락을 느낍니다.
‘함께 돌봄’이 있었기에 현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