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엄마, 철없는 딸. 그러나 여자이고픈 사람의 육아일상
- 등록일 : 2022-11-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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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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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가 없던, 기약없는 날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하였다. 제 스스로 때가 무르익어, 내게로 오는 것이라 한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의 관문을 넘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난소 기능 수치 0.8이라는 숫자카드를 덥석 받아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난임 병원에서 처방해준 숱한 약들과 주사액, 빼곡히 '임신 실패'를 상기시켜주던 카드 사용내역서 사이를 오갔다. 난임의 늪에 빠져들 때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위안 삼았다. 주변에서 건네는 오지랖 어린 관심을 피해 다녔다. 끊임없이 자괴감과 마주했다. 화가 났다. 대학 입시, 취업, 연애, 결혼.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하나씩 열 때마다 호락호락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임신, 너마저. 난임치료를 위해 부산, 대구, 서울 찍고 광주_여러 도시를 떠돌았고 전국의 절들에, 초를 켜고 쌀을 올렸다. 그러다 지치고 지쳐, 임신이라는 단어를 놓고 이혼이라는 카드를 솔곳이 꺼내어들던 부부싸움 날 끝에 임신, 피검사 수치를 받아 들었다.
<D-day는 있었으나, 아슬아슬한 날들>
가까스로 쌍둥이 임신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행여 설렘이 실망이 되고, 기대가 슬픔이 될까 봐 두려워 기쁜 기색도 내지 못했다. 몇 번의 하혈을 거치며 어렵게 잡은 인연의 끈을 놓칠까봐 두려워 울었다. 심한 입덧으로 위액을 토해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던 날들을 꼬박 채워, 39주에 접어들었다. 유도분만을 시도했지만 실패, 무통주사천국을 기대했지만 실패. 생지옥을 경험하다, 자연분만으로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그와 동시에 산고의 고통만큼 '젖몸살'도 무섭더라는, 출산 선배들의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두 팔이 아쉬운 날들>
내 인생 첫 육아였건만, 앞으로 울고 뒤로 떼쓰는 두 아이를 한꺼번에 케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아이 젖을 물리다 재우고선, 또 다시 다른 아이 젖병을 드는 새벽녘에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이리 걷고 저리 뛰는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며 씩씩대고 있었다.
난임 일상에서 탈출만 할 수 있다면, 엄마라는 빛나는 훈장을 달 수만 있다면.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바라던 가정법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건만 나는 난임일상때와는 결이 다른 한숨과 눈물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빈번히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왜, 출산의 고통 끝에, 육아의 수고로움까지 혼자 감내해야 하는 거지? 아이들 사이에서 퀭한 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나는 이렇게 희미해져 가는 걸까? 그런데도, 왜 명절에나, 제사때도 온전히 바빠야 하는 건, 여자인 걸까? 티도 안나는 집안일 끝에, 왜 '집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내 노동은 폄하당하는걸까?
그러다 어떤 날은, 화가 치밀어올라 아이들에게 쏟아내기도 했다가 수시로 그 불똥을 주변에 튀겼다. 힘듦을 토로하는 내게, 친정엄마는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친정엄마의 앳된 날들>
나는 넋두리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을 뿐인데 엄마 때의 육아 이야기는 참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기저귀 천을 빨던 냇가를 지나...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사상 준비를 위해 걷던 시장통에 접어들었고, 아이를 둘러업고 회갑연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마을 경로당 앞을 찍었다. 급기야, 총성 소리가 쏟아지던 5월의 어느 날, 이불만 뒤짚어 씌워주고 나간 남편을 기다렸다던 이불속에까지 드나들다 왔다. 지금의 나보다 더 앳된 나이의 엄마였다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며 엄마는 내 건조기를 훑었고 제사상 대행 명함을 힐끗거렸으며 지난날, 본인의 회갑연 한정식집 음식을 논했다. 그리고 '아이 돌봄'을 통해 간간히 오시던 돌봄샘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 딸, 여자 사이를 오가는 날들>
쌍둥이가 꼬물이를 벗어나 6세가 된 지금까지 내내 나는 나약한 엄마와 철없는 딸, 그리고 꽃같은 여자 사이를 오가고 있다. 빈번히 뱃살을 매만지며 44-55 사이즈를 오가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10km의 조깅마저 허락지 않는 지금의 몸을 서글퍼한다. 경력단절을 걱정하며 다시 들 일이 있을까 싶은, 노트북 가방 대신 아이들 학원 가방을 들쳐 멘다. 그러면서 이제는 홀가분해져야 마땅한, 친정엄마의 육아 도움 손길을 은근히 기대해본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옛날에의 시집살이 설움이 불쑥불쑥 생각나 화가 난다는 친정엄마에게. 세 아이, 교육에서부터 취업, 연애, 결혼까지_ 하나하나 관문을 넘을 때마다 때론 같이 뛰고 늘 눈치를 살피던 엄마에게. 철없는 딸은 이러할 진데 '자식은 늘 아홉을 뺐고도 하나를 더 달라고 조르는데 부모는 열을 주고도 하나가 더 없는 게 가슴 아프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처럼 친정엄마는 여전히 자식인 내 앞에서,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 손주 앞에서 기꺼이 '을'이 된다. 염치가 없을 법도 한데, 육아 도움마저 기대하는 딸들 앞에, 미안해한다. 몸이 하나뿐인 엄마는 다섯 손주를 한꺼번에 다 안을 길이 없어 난처해한다.
<모든 날, 모든 순간 웃음과 위로와 감동을 주는, 너희들의 날들>
철없는 엄마 마음은 어떨지언정, 아이들은 저마다 하루하루 색다른 웃음과 감동을 준다. '열을 주고도 하나가 더 없는 게 가슴이 아프다' 는 부모 마음을 어설프게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그 허무맹랑한 표현이 이해가 될 만큼. 아이들이 주는 빛나는 에너지 앞에 시시때때로 웃었다가, 눈물을 훔쳤다가, 분노했다가... 육아 일상 속의 감정들은 널을 뛰지만!
<어설프고 철없는 날들이 모여...>
그럼에도 철없는 엄마가, 철이 드는 '진짜 부모'가 되는 순간들은 첩첩이 쌓일테다. 아이들이 주는 웃음으로 더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한 동력을 얻고 아이들이 아픈 날엔,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난날 우리네 부모의 숱한 날들을 되뇌일테다. 힘든 날들보다 사랑과 보람이 넘치는 새로운 날들에 위안을 삼으며 육퇴 후 맥주 한 캔을 딴다. 철없는 엄마를 달래어본다. 생애 첫 육아로, 부산스러운 엄마에게 응원의 인사를 중얼거려본다. 내 부모가 그동안 쏟았던 피, 땀, 눈물을 되뇌어본다. 그리고 오징어를 질겅거리며, 노래를 한 곡 틀어본다.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 본 사진 속
아빠(엄마)를 닮아있네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아빠(엄마)
화려한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아들의 웃음꽃 피우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