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체험수기] 가랑비 같은 행복
- 등록일 : 2022-11-11 23:29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박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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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인 내 친구들은 대부분 미혼이고, 결혼한 친구들 중 반은 딩크다.
친구들이 왜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냐고 물어보곤 하는데…솔직히 말하면 나와 남편도 확신을 가지고 아기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아기를 갖기 전까지는, 아니 임신중에도 현실감이 없고 우리가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감만 있었다.
내가 확신이 생긴 것은 처음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순간이었다. 막 낳은 아기를 내게 안겨 줬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말이다.
2.88kg로 겨우 미숙아를 면한 눈도 못 뜬 찹쌀이(태명)가 작은 입을 와앙!! 벌리고 엄청난 힘으로 젖을 빨 때. 빨다가 잠깐 쉬면서 숨을 고르고 다시 엄청 빨고…힘든지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나는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뱃속에서 37주간 동고동락했던 작은 태아가 이제 세상에 태어나 나의 아기가 됐다니. 이 아기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사람이 젖을 줄 수 있는 나라니!
첫 모유수유의 순간, 나도, 우리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 (아..모유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이 이후로 유두혼동으로 엄청나게 고생했다…)
아기와 사랑에 빠진 후 가장 많이 바뀐 한 가지는 바로 행복과의 관계다.
행복이 비라면,
아기를 만나기 전 나에게 행복은 가뭄에 단비 같이 오는 것이었다. 1년간 열심히 일하다 연차쓰고 떠나는 여행! 남편과 심야영화 데이트! 비싸고 맛있는 미슐랭 맛집! 자주 할 수는 없지만 즐겁고 신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 행복이었다.
그런데 아기가 오고 나서는 끊임없이 가랑비가 내려 땅이 마를 일이 없다. 하루에도 여러번 작고 사소한 일들로 행복이 온다.
찹쌀이가내 품에서 코 잠들 때. 찹쌀이를 목욕시키며 찹쌀궁뎅이에 로션을 찹찹 발라줄 때. 그냥 찹쌀이와 눈을 맞출 때. 아기가 나를 보고 웃어줬을 때. 밤잠을 재우며 마지막으로 기도해 주고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볼 때.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던데. 아기가 가져다 준 행복이 너무 커서 치트키(?)를 쓴 느낌이다.
60일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시간에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가르쳐준 찹쌀이 아가야! 네가 공부 잘하기를,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오늘도 생각해.
너를 가지고 낳는 과정이 항상 쉽지는 않았어. 입덧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거실에서 밤을 지샜고, 잠이 너무 와서 회의시간에 졸곤 했지. 이직한지 얼마 안 된 회사엔 산부인과 검진을 간다고 휴가를 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어. 이제야 배가 나온 몸에 좀 익숙해졌나 했더니 찹쌀이는 준비도 안 됐는데 찹쌀이 집이 너를 내쫓으려 해서 조산기로 병원에 2달을 입원해 있었어. 며칠마다 한번씩 링거를 교체하느라 엄마 팔에 아직도 열 개가 넘는 자국이 있지(크면 너 보여주려고 찍어놨다!)! 드디어 네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아파본 적은 평생 처음이야. 이건 영상도 찍어놨는데 네가 아기를 안 낳는다고 할까봐 보여주진 못하겠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겠지만(엄마도 너를 낳기 전까지는 못 믿었어) 힘들었던 임신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다는 출산의 고통이 이미 생각도 나지 않아. 찹쌀이가 태어나서 60일밖에 안된 이 시간동안, 엄마가 33년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쁨을 엄마 아빠에게 줬단다. 이런 행복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우리 아가가 왔나봐. 찹쌀아,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