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체험수기> 고맙다, 우리 아기.
- 등록일 : 2022-11-11 15:23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홍슬기
- 조회수 : 1153
“산모님, 아기 심장초음파 결과가 나왔는데요. 지하 1층 소아과 방문 부탁드려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 막 조리원에 들어온 3일차 초보 엄마. 그때의 나는 아기한테 어떻게 젖을 잘 물릴까, 왜 모유가 영 나오질 않을까와 같은, 그맘때쯤의 초보 엄마들이 으레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본 나의 아기는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기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몸은 다 풀리지 않았지만 몹시 신이 났다. 내 아기, 우리 아기. 내 머릿속은 봄날의 꽃밭 같았다.
“한 달 이내로 큰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내 꽃밭에 구름이 드리웠다.
나는 임신기간 내내 너무 행복했다. 입덧은 금방 가셨고, 그나마도 심하지 않았으며, 아기와 함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활력이 가득했다. 오죽하면 ‘나는 임신 체질인가봐!’했을까. 아기는 신나게 내 배를 차며 태동을 했고, 나와 남편은 태동에 맞춰 아기와 인사를 했다. 아기의 키와 몸무게도 모범적으로 잘 크고 있었다. 병원에서 초음파 기계를 댔을 때 들려오는 심장소리는 규칙적이고 우렁찼다. 그야, 내 뱃속에서는 심장 구멍이 아기에게 어떤 위협도 끼치지 못했을테니까 말이다. 그래, 우리 아기에게는 심실과 심방에 큰 구멍이 하나씩 있었다.
소아과 선생님은 아주 상세하게, 또 친절하게 초음파 결과를 안내해주었다. 결과 내용을 침착하게 이해하려고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밖에서 울고싶지 않아 울음을 참으며 내용을 머릿속에 구겨넣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도 조리원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내 손에는 아기의 심장초음파CD와 소아과 선생님이 그려준 아기의 심장 모습과 병명이 담긴 종이가 들려 있었다. 심실중격결손, 심방중격결손. 내 아기의 병명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남편이 어떤 기분이었을지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만, ‘한 달 이내로 큰 병원에 갈 것’이라는 단서에 따라 내가 몸조리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조리원에 있게 했고, 한편으로는 지인들에게 병원을 수소문했다.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조리원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아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조리원 내 방으로 돌아올때마다 슬퍼서 눈물이 났다. 엄마가 강해야하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 울고 떨쳐내자.’ 우울증이 생길 것만 같은 조리원의 쓸쓸한 분위기를 십분 이용해서 엉엉 울었다. 다 울고 기분이 좀 나아지면 임신때도 하지 않았던 운동을 했다. 그렇게 이틀을 엉엉 울고나니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조리원 생활을 마쳤다.
아기는 결국 서울에 있는 유명 병원으로 가게 됐다. 빨리 수술해야한다하여 수술일자도 잡았다. 수술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교수님의 ‘걱정하시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달이 된 아기는 약 8시간동안 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처음 만난 아기를 보고 또 울었다. 아기가 너무 예쁘고 대견하고 고마웠다. 아기는 중환자실에서 7일을 있었고, 그 중 4일은 잠든 채로 보냈다. 처음에는 2~3일만 재울 것이라 했는데 깨우는 것이 점점 늦어져서 마음 한편으로 걱정을 했다.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너무 건강해지다보니 낮잠을 잘 안잔다. ‘제발 좀 자 주지 않겠니?’
오늘은 우리 아기가 수술한지 꼭 100일이 되는 날이다. 건강해줘서 고맙다. 갈비뼈를 여는 무서운 수술도 잘 견뎌줘서 고맙다. 외로운 중환자실에서도 잘 있어줘서 고맙다. 편한 콧줄로 분유를 먹지 않고 자기 입으로 빨아줘서 고맙다. 쓴 약도 싫어하지 않고 잘 먹어줘서 고맙다. 방긋방긋 잘 웃어줘서 고맙다. 잘 커줘서 고맙다. 너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꽃밭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그저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아기.
(그리고 아직 병원에 있는 아기들, 특히 서울삼성병원 소아중환자실에 입원중인 E와 H가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에게 돌아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