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체험 수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등록일 : 2022-11-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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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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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체험 수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이와 함께한 100일 넘는 시간의 일기)
늦었다면 늦은 30대 후반에 깜짝 선물로 찾아온 우리 아기.
임신한 지 몰랐을 때 아내가 맨날 자고 또 자길래 “또자?” 하고 놀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배 속의 아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태명은 또자가 되었다^^
아내는 출산 한 달 전 출산 휴가를 들어갔고, 광주광역시에서 지원하는 ‘임신부 막달 가사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여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하며 또자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 일주일을 앞두고, 나는 단정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퇴근 후 머리 자르러 미용실에 갔는데 아내가 양수가 터졌다고 전화가 왔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지만,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 부랴부랴 출산 가방을 챙기고 병원으로 향하며 또자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배 속에서 태변을 보며 힘든 시간을 보낸 또자. 응급제왕절개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포대기에 싸인 또자와 첫 대면을 하였다. 눈물도 나고 감동의 물결이 요동칠 줄 알았는데 막상 또자를 보니 그냥 기분이 묘하고 별것이 없었다. 옆에 있던 외국인 아저씨는 엉엉 울면서 가족들과 통화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무정한 아빠인 것 같아 또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왕절개 후 일주일의 회복 기간 동안 아내 옆에 붙어 산바라지를 했고, 그 후 아내와 또자는 조리원에서 10여 일을 더 보낸 후 집으로 왔다.
어렸을 적 10년 터울의 막냇동생이 크는 걸 보아온 터라 신생아 또자가 있는 우리집이 그리 많이 어색하진 않았다. 그리고 정부지원 산후도우미의 도움으로 기본적인 수유, 트림, 목욕 방법을 습득해서 좀 더 수월하게 육아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산후도우미 이모님한테는 한없이 얌전하고 천사인 우리 또자가 내 품에서는 울고 불고 알 수 없는 아기가 된다는 것..^^
낮에 혼자 아이 돌보느라 힘든 아내에게 “저녁 시간은 나에게 맡겨!”라고 당당히 말했다. 2~3시간 간격으로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열심히 공부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정말 쉽지 않았다(정말이라는 말을 한 백번은 붙이고 싶다). 고백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또자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짜증을 내고 나면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육아 초보인 나는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도 같은 육아 초보인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아이와 나를 지탱해 주었다. 같은 초보지만 결이 다른 초보. 엄마란 존재는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둘도 없는 전우가 되었다.
출생신고를 마치고 또자는 시원이가 되었다. 일하고 있을 때 아내는 시원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온다. 행복 충전된 나는 피로감을 잊고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 그리고 거래처 사람이나 동료들에게 시원이를 보여주고 다닌다. 친구들에게도 사생활을 말하기 꺼리던 내가 어느덧 팔불출 아빠가 된 순간이다.
100일 되었을 땐 백일상에 올라갈 것들을 직접 만들어 준비하기도 하며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시원이가 가족들과 이웃들 앞에 서는 첫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 시원이 백일기념 떡을 직장동료, 주변 이웃들, 경비실 아저씨들께 돌렸다. 뜻하지 않게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던 앞집 이웃은 아이 옷 선물을 해주셨고, 많은 분들이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건네주셨다.
요즘은 회사업무 단톡방에 업무자료보다 시원이 사진과 동영상을 더 자주 올리고 있다. 내 아이처럼 귀여워해 주시고 안부를 물어주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도 육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이 계획이 있는 친구들에게 준비사항을 조언해주기도 하고, 시원이 쓰던 것을 물려주기 위해 보관하기도 하며, 육아 선배 친구에겐 물건을 물려받으러 가기도 한다. 아이 성장에 따라 필요한 물품은 이웃들끼리 무료 나눔도 해서 퇴근 후 물품을 받기 위해 시내 투어를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때로는 시원이에게 재밌는 장난감 보여주려고 아내 몰래 사와 혼나기도 한다. 조만간 고급게임기나 성능 좋은 컴퓨터도 사줄 예정인데 아내가 오해할 것 같아 덧붙이지만 이것은 모두 시원이를 위한 것이다^^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커가는 게 느껴진다. 키도 부쩍 큰 것 같고, 몸무게도 늘고 있고, 말도 조금씩 알아먹는 것 같고, 툭하면 울던 아이가 이제 제법 기다릴 줄도 안다. 최근에 처음으로 시원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셋이 같이 산책도 갔다 왔는데 앞으로 우리 가족 함께 놀러 다닐 것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기대감에 부풀어 지내고 있다.
오늘도 아이의 옹알이, 몸짓에 집중하며 맘마 대령, 기저귀 갈기, 자장가 불러주기, 재밌는 놀이를 선사한다. 아이가 웃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