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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의 본업은 찍사



운동선수로 활약했을만큼 건강하고 활동적이었던 언니와 특전사 출신으로 세상을 호령하던 형부는 둘을 똑닮은 건장한 아들 둘을 낳았고 참 단란하고 보기 좋은 콩깍지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저런 가족이라면 나도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네 가족의 일상은 나에게 워너비 스타와도 같았습니다.

주말이면 어디든 나가서 등산도 하고 산책도 하고 바다도 보고 오던 그 가족에게 동화되어 나도 어느덧 그 여행사의 팀원이 되어있었습니다.

언니 가족에 껴서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언니 가족 사진을 찍어주는 찍사로 전락되고 말았지만 그런 가족을 찍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던 언니는 청천벽력같은 암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데 무슨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지만 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지속하면서 사람이 반쪽이 됐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쇠약해진 언니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힘드니 마음까지 약해지는지 마음 아픈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언니를 볼 때마다 응원과 함께 두려움도 함께 찾아오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보니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엄마가 많이 아파서 예민하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는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걸 느끼겠더라구요.

엄마가 아프다고 아이들까지 집에 있으면서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병원 살이에 매진하는 언니와 형부를 대신해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산으로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어할 것 같았던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조카들은 강철 체력을 가지고 있는지 날다람쥐처럼 산을 잘만 오르더라구요. 이제는 쫓아가지도 못할 만큼 달려서 정상을 오르는 녀석들이 되었답니다.

 

퇴근을 하고 언니집으로 가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숙제를 하고 있는 듬직한 등짝들이 나를 반깁니다.

잔소리 하나 없이 자기 할 일 하는 초등 남자애들이 어디 있을까요.

어쩌면 너무 빨리 철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합니다.

조카들 밥을 챙겨주면서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학원 이야기,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내가 이모인지 새엄마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조카들도 장난처럼 새엄마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그 새엄마라는 말이 듣기 싫지 않은건 내가 이미 이 가족의 일원이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다르게 호전되어가는 언니는 지금은 아주 많이 건강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퇴원해서 요양원에서 치료중이지만 아이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까운 곳은 함께 산책도 하면서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새엄마가 되었지만 엄마의 타이틀을 돌려줄 때까지 언니가 부디 건강해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도 언니의 노력에 작지만 강력한 한 방울이 되어보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모의 사랑과 정성을 아이들도 알고 있는지 커서 어른이 되면 이모 가방도 사주고 스포츠카도 사줄거라고 말하는 이 초딩들을 보고 있자면 조카가 아니라 내 새끼라는 생각이 한층 더 생기곤 합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뭐든지 다해주려고 하는 형부와 언니도 나에게는 참 커다란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더 많은데,... 내가 받은 사랑이 더 큰데 언니 패밀리들은 나를 새엄마라는 직함과 함께 항상 감사를 표현합니다. 우리의 이런 사랑과 감사와 고마움들이 모두 모여서 건강해진 모습으로 이 가족을 찍어주던 나의 원래 자리 찍사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