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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체험수기] 좌충우돌 고위험 산모 출산기

<좌충우돌 고위험 산모 출산기>

 

작년 10월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 되었을 때어안이 벙벙했다아기는 3-4년 후에나 가지고신혼 생활을 즐기자고 남편과 이야기한 터였다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욜로 생활을 갓 즐기고 있었는데임신이라니이직한 직장에 임신이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퇴사를 결정해야 했다.

 

온전히 뱃속의 아기를 돌보며 지냈던 시간들은 설렜지만 무서웠고기다려졌지만 또 출산의 두려움에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싶었던 마음이 공존했다다만우리에게 찾아온 천사같은 호빵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33주차에 급작스러운 조기 진통으로 양수 파열이 되어전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아야했다고위험산모 집중치료실에 입원을 해야 했던 나는 매일매일 눈물을 흘렸다.

 

당연히 10개월을 채우고 우아하고 시원하게 자연 분만으로 숭덩 건강하게 아기를 낳을 줄 알았다그래서 출산 용품도 당연스레 자연분만 용품으로 좌욕기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미리 샀었다산부인과 VIP병실에서 안정되게 출산할 줄 알았는데 내가 대학 병원에서 병실이 없어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는 신세가 되어야 할 줄은 몰랐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신세 한탄이 호빵이에게 해가 될 줄 알면서양수가 터져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호빵이가 더 힘들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의료진을 붙잡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또 물었다자궁수축억제제와 항생제폐성숙주사를 맞으며 34주까지 버텨야 했다. 34주 출산도 조산이기에 행여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마음을 졸이는 하루하루였다.

 

그러다 병실을 이동해서 집중치료실에 함께 지내던 내 옆의 산모들과 처음 만났는데산모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33주면 아기 거의 키웠네요저는 이곳에 17주부터 들어왔고지금 24주에요앞으로 30주까지 채우는 게 목표에요.”

전 지금 21주에요자궁에 돌처럼 단단해지는 병이 있는데시험관으로 쌍둥이가 생겨버렸어요수축이 심해서 16주부터 들어와 계속 누워만 있네요.”

 

이 말을 들으니흐르던 내 눈물과 계속 되던 내 원망이 뚝 그쳤다세상에 나보다 더 강한 엄마들이 많음을 깨달았다창문하나 없는 병원에서 몇 달을 누워만 지내며 각종 링거 주사를 몇 개씩 팔에 주렁주렁 달며 힘겹게 버티는 엄마들의 희생이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정상 분만은 37주부터지만 대학병원에서 34주는 정상 분만의 범주로 보니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산모들의 말을 듣기로 했다매일 3시간 간격으로 찾아와 혈압태동 검사를 해주니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했다.

 

34주가 될 무렵 교수님이 자궁수축억제제를 떼고 자연 진통을 기다려 아기를 낳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셨다그런데 불규칙적인 가진통만 있을 뿐진진통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양수는 매일 매일 새고 있는데진통은 오질 않으니 초조함은 점점 더 커졌다양수가 부족해 아기가 힘겨워 하진 않는지 걱정이 되었다.

 

교수님은 초산이라 진행이 더딘 것 같다 하시면서지금까지의 상황이 안정되니 35주까지 폐성숙 주사 한 번 더 맞아 자발호흡 가능성을 더 높여보자고 말씀하셨다무엇보다 어차피 지금 유도분만을 진행해도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말씀에 1주 더 버텨보기로 했다.

 

호빵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다가오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굳게 마음을 다잡은 시간들을 보냈다. 34주가 넘으면서 고위험 산모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어 또 이곳저곳 병실을 이사 다녀야 했다.

 

그리고 35주차가 되어 유도분만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38시간이 넘도록 자궁문은 열릴 생각을 하질 않았다수축 검사에서 수치는 계속 100을 찍고 있는데 왜 자궁문은 열리지 않는지 내 몸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6시간마다 하는 내진은 찢어질 듯 너무 아팠고태동 검사를 위해 배에 붙여놓은 기기 때문에 정 자세로 누워만 있어야 해서 허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결국 교수님은 응급 제왕절개를 권유하셨고나는 결정한지 1시간 만에 바로 수술실에 들어갔다나에게 아침 식사를 먹인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수면 마취 없이 하반신 마취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맨 정신으로 수술의 전 과정을 느껴야 했던 나는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내면의 모든 힘을 쏟았다.

 

곧 수술은 시작되었고내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다아기가 건강하게 잘 나와야 할 텐데수술대에 오른 나는 내 몸이 어떻게 되는 지보다 아기만 걱정이 되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곧 배가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호빵이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그리고 세상에 나온 호빵이는 그 누구보다 우렁차게 울었다몹시 많이 울어주었다그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절로 눈물이 흘렀다감동의 눈물이 계속 흐르자 마취과 선생님께서 내 눈물을 닦아주시며 고생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신생아과 선생님들이 아기를 처치해주신 뒤 아기를 내 옆에 데려와주었다양수가 많이 빠져있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많이 불지 않은 얼굴이었다꼭 감은 두 눈과 앙다문 입술언제 울었나 싶게 깊게 잠든 우리 아기를 보니 내가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 호빵이는 도영이가 되어 6개월차가 되었다비록 한 달을 덜 품어준 채 조산아로 세상에 일찍 태어났지만 3.37kg로 태어난 우량아인 우리 아기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하는 순둥순둥한 아기이다.

 

저도 조산아로 태어났어요바로 이 병원의 산부인과에서요저희 어머니도 산모님처럼 힘들게 저를 낳으셨답니다그래서 저는 지금 이 병원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의사로 근무하고 있어요저를 받아주신 의사처럼 되기 위해서요.”

 

나를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었다우리 도영이도 그 선생님처럼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인재가 되길 바라며오늘도 힘써 육아를 해본다.


우리 아들 도영아, 엄마가 평생 널 아껴주고 지켜주고 사랑할게.

엄마한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내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해.

우리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