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 이제 세 번째 눈물을 흘릴 차례
- 등록일 : 2022-11-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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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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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2016년 11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인 필리핀 국적의 여성을 만났습니다
첫 만남은 가볍게 차 한잔 마실 생각이었으며, 외국인이라는 호기심과 편견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란 짤막한 인사에 내가 지금껏 가졌던 편견과 우려 등이 일시에 불식됨을 느끼며, 아! 이런게 ‘인연’,‘운명’이구나! 하는 느낌과 동시에 50대가 되도록 홀로 지냈던 시간들이 찰라처럼 스치며 이 여인 만큼은 놓쳐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이미 나를 지배해버렸습니다.
다행히 연락처를 주고받고 만남을 가지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차에 아내가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폭력 등으로 상처를 입고 결별한 사연을 듣게 되었고,
너무 아타까운 심정과 진심으로 이 여인을 도와주어야 하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 법률적 문제와 첫 아이 출생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자신을 이 말 속에 빠뜨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국내법상 외국인과 혼인 신고를 하려면 배우자의 미혼증명서가 필요한데 필리핀은 이혼제도가 없어 혼인부존재 확인소송을 통해 서류를 발급 받아야 하는바, 이 소송을 2017년에 시작하여
코로나와 필리핀 화산폭발, 태풍, 필리핀 판사의 판단 유보등 여러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재도 여전히 소송이 진행형으로 머물러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2018년 1월 첫째 아이가 2.37kg의 작은 생명으로 우리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신생아실에서 흘러나오는 ‘인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조심스러워 안지 못한 채 미소만 머금은 내 모습은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었으리라 반추해봅니다.
이후 서울 필리핀 대사관에서 출생신고로 필리핀 국적을 취득 했지만, 한국 국적이 없는 관계로 교육, 의료 등 여러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서운함이 밀려오던
무렵인 2019년 10월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 둘째의 출생과 무국적자
살면서 법률적, 제도적 다양한 경험은 우리를 더욱 담담하게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필리핀 대사관에 둘째 아이 출생신고를 통해 필리핀 국적을 취득함을 당연시 했는데, 대사관측 답변에
우리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불법체류 및 사실혼 관계에 관한 법률이 바뀌어 우리의 사례는 국적 취득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국내 출생신고는 법률에 따라 더더욱 불가한 상황... 뉴스 이슈에서나 가끔 접해본 ‘무국적자’의 슬픔을 내 아이가 갖게 되었다는 현실에 암담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는 혼인 관계의
해소보다 아이의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정말 쉼 없이 대면, 비대면으로 뛰었습니다.
시청, 구청, 주민자치센터, 법원, 출입국관리소 등 국적에 관련된 부서 담당자를 수없이 만나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원론적인 답변뿐 해결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법원 판례를 접하고 바로 이거다! 신이 내게 주신 한 수 가 있구나! 하는 기대감에 2015년에 제정된 ‘친생자 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규정 일명 ‘사랑이법’을 통해,
즉시 가정법원에 전후의 사정과 관련 서류를 바탕으로 소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 둘째의 출생등록과 첫째의 국적취득
전문적인 법률가의 도움도 절실했습니다.
우리는 필린핀 서류와 국내 관공서 서류의 번역, 공증을 통한 자료제출에 최선을 다했고, 가정법원의 기일이 잡혀, 정말 타는 목마름으로 판사님께 진실된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숨죽이며 몇 주를 기다린 결과에 우리는 첫 번째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2020년 10월 29일 무국적 상태로 지내온지 1년여 만에 드디어 출생등록을 하게 되었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습니다.
한편으론 시간이 지날수록 첫째 아이의 국적 취득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4살이 넘도록 교육과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외국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을 때, 우리는 다시 법률기관과 행정기관에 진심어린 국적 취득 절차를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필리핀 대사관을 찾아가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번역, 공증 등 관련 서류의 준비는 지난 수 년간의 노하우로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든 절차를 끝마치고 5개월 기다림은 쉽지만은 않은 시간 들이었습니다.
2021년 12월 7일 법원 판결문과 출입국관리소에 필리핀국적포기서를 제출한 후 구청에서 ‘국적취득에 의한 신규등록’ 과 첫째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고
두 번째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짧은 번 아웃
두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어려움의 양면성을 가진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짧아지만 육아휴직도 해봤고, 현재는 육아 돌봄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근무를 하면서 정부의 좋은 정책에 혜택을 받고 있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정말 답이 없을 정도로 힘겨운게 사실입니다.
7, 8, 9월 사랑스런 아이들이 장념, 폐렴, 수족구로 돌아가면서 입·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내 인내는 한계치에 달하고 한 달에 5일 정도 근무하면서 내 생활이 무너지니,
나도 모르게 번 아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이들 엄마 외에는 어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대상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을 되찾자 스스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통해 나도 모르게 실컷 울고 나니 한결 가벼운 생각이 들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희망을 주는 아이, 그리고 세 번째 흘릴 눈물
4살, 5살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날마다 꼭 껴안고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도 엄마·아빠 사랑해요 라고 답하니, 하루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마술 같은 일들이 우리집 에서는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늦은 나이에 사랑스런 아이들과 만나는 기쁨을 여전히 누리고 있으나, 아쉬운 점은 정년퇴직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두렵지는 않습니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 새로운 활력으로 내게 다가오니 말입니다.
아이들 엄마도 나보다 더 넓은 포용력으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이 간절히 바라는 필리핀 소송이 조속히 해결되어 정식 혼인 신고를 하고 완전한 다문화 가정이 되어, 마지막 세 번째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의 큰 작용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