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 체험 수기 ]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
- 등록일 : 2022-10-22 02:10
- 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 작성자 : 박소정
- 조회수 : 3666
[ 육아 체험 수기 ]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
수년 전 스무 살 가을, 대학 진로를 선택하지 않고 취업의 전선에 뛰어든 나에게 갑작스레 아이가 생겼다. 계획된 임신이 아니었기에 많이 놀랐고 그저 막막했다. " 오빠, 이제 어떡하지? "라는 나의 걱정 어린 말에 " 괜찮아, 결혼하면 되지! 걱정하지 마! "라는 말로 안심 시켜준 현재의 남편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다음 연도 혼인신고를 하며 우린 정식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출산 사흘 전까지 일을 하며 태교나 몸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도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난 고마운 우리 큰 아들. 우리 아빤 아기 얼굴을 보자마자 " 어떻게 이렇게 닮았지? " 하며 남편과 많이 닮았다고 신기해하셨다. 손가락 발가락을 꼬물꼬물 꼼지락거리고, 입도 되게 조그맣고, 그 입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도 정말 조그마했다. 다리가 너무 가늘어 혹여 아이가 다칠까 기저귀도 조심스레 갈았고, 그 작은 입으로 제대로 먹긴 하는 건가 빤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너무 곤히 잘 땐 숨은 잘 쉬고 있나 코에 손가락을 대며 걱정하기도 했다. 남편도 아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고, 많이 좋아하고, 사랑스러워했다. 우린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다. 유모차에 태우고 나들이도 자주 하고, 바람이 꽤 불던 바닷가에서 남편이 아이를 품에 안고 바람을 막아주고, 나는 그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다 내가 너무 어리게 보여 주변 시선이 뜨거울 때가 종종 있었지만 남편과 가볍고 즐거운 농담으로 넘겨버리곤 했다. 언제는 종업원분이 남편에게 내 아버지냐고 묻기도 했는데 너무 웃겨서 며칠 남편을 놀려댔었고, 아이를 혼자 데리고 다니면 누나냐고 묻는 건 셀 수도 없었다. 아마 나이차가 있던 부부라 더욱 그랬나 보다. 그렇게 우릴 보고 밝게 웃는 아이를 키우며 힘들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냈고 시간이 흘러 나의 복직 시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제적 기반이 없었던 우리는 아이가 아직 많이 어렸지만 맞벌이를 택해야 했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고 하셔서 그나마 믿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아이고, 어째! 애기가 눈 위쪽을 다쳤어! 병원에 데려가서 꿰매야 할 것 같다! " 깜짝 놀란 나는 택시를 타고 아이에게 달려가 친정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 제발 시력에 이상이 없기를... ' 무던한 나지만 아이가 하필 눈 위 쪽을 다치니 시력에 이상이 생길까 신경이 예민해지고 불안해졌다. 친정엄마에겐 " 요놈이 까불다 그랬구나? 어이구, 아들! 조심했어야지! " 하며 괜히 미안해하실까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시력엔 이상이 없었고 의사선생님이 곧바로 수술장에 들어가 아이의 상처를 잘 꿰매주셨다. 눈물이 나왔지만 꾹 참고 아이를 달래며 상처 부위를 살펴봤다. ' 그래, 불행 중 다행이야... 눈을 다치진 않았잖아. ' 하며 안도를 하고 남겨질 흉터는 점점 옅어지길 바라며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보냈다. 괜히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아이를 고생시키고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했고, 미안해하는 친정엄마를 보며 더 가슴 아파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괜히 나 때문에 느지막이 육아를 다시 시작하신 엄마에게 어찌나 죄송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일을 했기에 아이와 떨어져 지낸 지 일 년여만에 안정적으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기뻤지만 아이에게 그동안 못해준 게 많은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리고 여러 감정이 스쳐갔다. 첫아이라, 내가 어렸던 터라 모르는 게 많고 힘들었던 육아였다. 몇 년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아이를 챙기고 나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걸까? 그 당시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 찍어놓은 영상과 사진을 보며 ' 맞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웠지~ 세상에, 언제 이렇게 컸을까? '라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아이도 예전에 찍어놓은 자신의 사진들과 영상을 좋아해서 세 식구가 함께 도란도란 그때를 떠올리며 얘기할 땐 참 행복하다. 그 어리고, 조그맣고, 순수한 웃음을 짓던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태권도에 다니면서 띠 색깔이 바뀌었다고 자랑을 하고, 놀이터에도 혼자 놀러 다녀올 만큼 제법 의젓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엄마 말을 좀 안 듣는 장난꾸러기 우리 큰 아들. 안 그래도 사랑을 많이 못 준 것 같아서 미안한데, 요즘은 아직 많이 어린 터울 긴 둘째가 다칠까 봐 장난치는 아이에게 큰 소리로 혼내기만 하는 것 같다. 그러곤 하루가 끝날 때쯤 후회스러움과 미안함에 잠든 아이의 옅어진 흉터를 들여다본다. ' 엄마가 많이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사랑을 많이 줘야 하는데... 많이 노력할게. ' 큰 아들에겐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