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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체험수기공모전] 내가 없어지는 일, 엄마

내가 없어지는 일, 엄마

출산과정에 대한 영상을 수도 없이 찾아보고 분만실에 들어갔지만 분만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당혹스러웠고 회복과정은 비참하기 까지 했다. 분만할 때 나의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닌 듯 했고 회복할 때 나의 몸은 부축 받지 않으면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충격적인 출산의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가슴에 불타는 돌덩이가 박힌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그 돌덩이라도 물려보겠다고 바스라질 것만 같은 손목으로 새벽마다 유축을 하던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라 엄마로 존재하고 있었다.

 

출산 후 입원실에 누워 있던 나에게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청력검사를 했는데 한 쪽 귀를 다시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양수가 덜 빠져서 그럴 수도 있다던 간호사선생님의 말에 안심하고 재검결과를 기다렸다. 자정이 다 되어가던 시간에 재검결과를 알리는 전화가 왔다. 또 다시 재검해야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2주 뒤에 실시한다고 했다. 으스러질 것 같던 고통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눈물만 줄줄 흘렀다. 모든 게 다 내 잘 못인 것만 같은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약 기운에 현기증이 나고 한 발자국 내 딛는 것이 겁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내가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수유실로 향했다. 핏덩이같은 아기를 받아 수유를 하며 아기의 귀를 붙잡고 엉엉 울면서 기도했다. 수유가 끝난 후에도 곤히 잠든 아기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올라왔다. 입원실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거울을 보았는데 마스크 코 부분만 흠뻑 젖어있었다.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왔다보다. 창피한지도 모르고 돌아가는 길 내내 울었다. 집 앞 슈퍼를 가도 립밤을 찍어 바르던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콧물 범벅 된 마스크를 보여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엄마로 존재하고 있었다. 2주 뒤 다시 실시했던 청력검사에서 우리 아기는 '매우정상'이라는 결과지를 받았다. 수능 때도 안 떨던 손을 떨었던 순간이다.

 

신생아에겐 타이머가 내장되어 있을까. 어쩜 2시간마다 정확하게 깰 수가 있을까? 조리원에서 돌아온 집에서의 현실육아는 조리했던 몸을 다시 조리해야 할 만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새벽마다 앙앙 우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혹시나 게워낼까 몇 분을 더 안다가 재우기를 날마다 반복했다. 잠이 유난히 많고 한 번 잠들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내가, 코딱지가 껴서 그릉 그릉 하는 아기의 숨소리에 밤새 뜬 눈으로 걱정하며 작디 작은 콧구멍 입구에만 면봉을 몇 번 휘젓다 포기하는 쫄보 엄마가 되어있었다. 잠에 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우는 아기를 안고 같이 울어버리는 나는 울보 엄마가 되어있었다.

 

엄마가 되는 건 내가 없어지는 일이다. 정말 고통스러운 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내가 사라지고 서서히 엄마로 존재하기 시작하기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그제서야 없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난 괜찮다. 내가 없어진 대신 네가 왔으니 난 괜찮다. 내가 엄마로 존재하고 있어서 네가 있는거니까 괜찮다. 그래서 나는 네가 없던 멋들어진 이전의 내 삶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지금 삶이 꽤나 행복하다.

부서지기 쉬웠던 나를 단단한 엄마로 만들어준 너에게 오늘도 나는 내 전부를 녹여낸다.